한국에서는 티스토리보다 역시나 네이버 블로그가 연동도 빠르고 사용도 편리하군요..^^;;
하루빨리 모든 블로그가 편히 사용되며 통합되는 그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여행은 무사히 끝이 났구요 지금은 한국에서 머물고있습니다.
그동안 티스토리에서 구경해주신 분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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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archist Junoh.'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처음오신 분들께..  (0) 2010.04.28
Posted by kwonddolg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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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6

[태양을 피하고 싶었어]

어제 에스파한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비자연장에 10km 이상을 걸었더니 발바닥에 물집이 잡혔다. 거기다 잠 한숨 안자고 저녁에 다시 4시간 정도를 걸었더니 전날 12시에 눈을 감았는데도 일어난 시간은 10시..;; 형님은 벌써 일어나서 샤워까지 하고는 나를 기다린 눈치다. 서둘러 샤워를 하고 나갈 준비를 하고 일단 대사관에 전화부터 했다. 결론은 우선 일요일에 대사관으로 찾아가는 것. 그리고 다시 이란 정부에 시도를 해보고 적어도 19일에 결론이 날듯 하다. 전화를 끊고 더 이상 스트레스 받지 않기로 했다. 일요일에 대사관으로 가서 최대한 노력을 한 다음 그래도 안 된다고 한다면 깨끗하게 포기하고 일단 방법은 아직까지 하나뿐이다. 한국으로 배송하려면 1600달러의 어마한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절대로 그렇게는 하지 못하고 생각한 하나의 방법은 다시 터키와 이란의 국경으로 돌아가 터키의 도우베야짓에서 스쿠터를 처분한 뒤 버스를 타고 이스탄불로 간 뒤 인도 비행기를 타는 것이다. 전화를 끊고 형님은 어제부터 내가 인터넷 인터넷을 노래 불러서 그런지 자기도 인터넷을 써야 한다며 인터넷 카페를 가자고 한다. 근처 인터넷 카페로 가서 나는 노트북을 꺼내어 이때까지 여행기를 블로그에 올리는데 아무리 인터넷 카페라도 인터넷 속도가 너무 느리며 심지어 올리다가 끊기기 까지 한다..;; 그래도 한 시간에 한국 PC방과 비슷한 가격으로 40분 정도 노력한 끝에 여행기를 올리고 메일 확인을 하는데 터키에서는 Google 지도와 Youtube가 안되었는데 이란에서는 Facebook이 열리지 않는다. 왜 이런걸 막아놓는지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인터넷을 사용하는데 형님이 그사이 혹시나 좋지 않는 상황을 대비해서 내 비행기 티켓이 수정이 가능하며 이스탄불에서 인도 델리로 가는 표가 27일 날 있다는 걸 알려 주신다. 바로 나도 비행기 시간을 확인하고 가격을 알아보니 내가 낸 가격에 50달러 정도만 더 계산하면 되는 가격이다. 그래.. 최악의 상황에는 일단 이 방법밖에 없을 것 같군.. 그러다가 문득 이란 국경에서 테헤란까지 왔던 길을 떠 올린다.. 아.. 그 사막을 다시 되 돌아 간다면 엄청 고생하겠군.. 차라리 사막이라도 동쪽이면 몰라..;; 그렇게 인터넷을 1시간 사용하고 밖으로 나오는데 12시 낯의 찌는 더위의 에스파한은 도저히 돌아다닌 엄두가 나질 않게 만드는데 나는 스쿠터 문제로.. 형님은 인터넷으로 인도에서 파키스탄 비자에 관하여 알아봤는데 소식이 그다지 좋지 않은지.. 둘 다 살짝 짜증 나는 기분에 일단 더위나 피하자고 근처 음료 가게에 들러 앉아서 주스를 마시다가 물 담배를 피러 가자는 말에 근처 차 집을 들러 물 담배를 피우며 더위를 피했다. 그리고 오후 5시가 지나서야 밖으로 나와 Vank Cathedral교회로 향했다. 이슬람 국가인 이란에도 교회가 있다는 말에 의심스러워 가봤지만 걸어가는 거리로는 생각보다 길었고 걸을 수록 물집 잡힌 발바닥에 통증이 오는데 뭐 이러다가 굳은살로 변하겠지..;; 지도를 보면 걷기를 30분이 넘으니 교회가 처음 에스파한에서 비자 연장을 하려고 걸었던 길목에 위치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Vank Cathedral에 도착했지만 금요일에는 일찍 닫는다는 표지판과 굳게 닫힌 문이 우리는 반기었고 Yazd Old city에서 본 짚과 진흙으로 만들어진 높은 벽으로 그 내부는 볼 수 없지만 위로 교회라는걸 알리듯 뾰족한 지붕에 십자가가 보인다. 굳게 닫힌 문 앞 그늘에 앉아 고생하며 걸어 왔는데 들어가지도 못하여 멍하니 교회를 바라볼 뿐이다. 형님이 갈 때는 버스 타고 가자는데 당연 찬성이다. 이거 50원 아끼려다가 몸이 더 상하겠다..;; 그렇게 교회 앞 그늘에 앉아서 더위를 피하며 쉬다가 해가 저물 때 쯤 내일 내 여권을 찾고 다시 들러보자는 말로 버스를 타고 다시 도심으로 향했다 오늘 하루 덥다는 핑계로 돌아 다니지 못하여 마지막으로 이란에서 가장 큰 모스크인 Jameh Mosque로 가기로 했고 역시나 Esfahan의 중심인 Imam Hossein sq까지 버스를 타고 걸어갔다. 어제 하루를 너무 걷다 보니 그 여파가 오늘까지 오는지 걷는 발걸음이 무겁게만 느껴진다.. 2km정도를 걸어가니 Jameh Mosque에 도착했고 계속해서 발전을 하고 있는지 가는 길에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란에서 가장 큰 모스크인 Jameh Mosque. 다리가 무거워 힘들긴 했지만 내부로 들어가자 해가 질 무렵 도착을 해서 그런지 온통 붉은 빛으로 물든 Jameh Mosque는 이란에서 가장 크다는 모스크라는 말에 기대를 해서 그런지 직접 눈으로 보니 그 크기는 생각보다 크다는 생각을 들지 않았지만 불게 물든 안쪽 광장과 모스크에서 흘러나오는 고유의 음악소리 그리고 알라에게 기도를 드리는 이란사람들 그 모든 것이 평화로워 보였다. 모스크 앞에 서서 나도 잠시 눈을 감아 내 여행과 가족의 건강에 기도를 드려 본다. Jameh Mosque내부를 천천히 둘러보고는 배가 고파 다시 돌아오는데 가는 길에 아프가니스탄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하는데 형님에게 왜 주몽을 보지 않았느냐 왜 여자친구가 없느냐 등 가는 길 내내 이야기를 거는데 가뜩이나 힘들어 지쳐서 걸어가는데 형님의 도와달라는 눈빛이 그저 웃기기만 했다. 이란을 여행하면서 이란 사람이든 다른 중동 국가 사람이든 외국인에 대하여 관심이 상당히 많다. 항상 지나가면 Hello! how are you?는 5m마다 기본으로 들을 수 있고 심지어 하루에 5번 이상은 붙들려 이야기를 해야 하니 처음에는 재미있다지만 하루 이틀이 지나면 그냥 인사만 하고 가는 이란 사람에게도 매번 인사하기도 힘들어 진다..;; 그래서 나는 그냥 눈 웃음. 그리고 혹시나 말을 걸어오려는 느낌이면 열심히 사진 찍는 동작을 취하니 얼굴이 선해 보이는 형님이 내 못까지 계속 상대 해 주어야 하니 한번씩은 뒤에서 걷는데 항상 비슷한 대답을 귀찮아 해도 끝까지 대답하는 모습이 그저 웃길 때가 많다. 그렇게 숙소로 가는 길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와 바로 샤워를 하고 오늘 입었던 옷을 손 빨래 하고 침대에 누워 일기를 쓴다. 내일은 아침 일찍 일어나 여권을 찾아야 하니 일찍 눈을 감아야겠다.

 

7/17

여권을 받기 위해 시간을 맞추고 잠들었지만 1시간 뒤인 8시에 일어났다. 샤워를 하고 형님을 깨운 뒤 check out과 배낭을 보관한 뒤 버스를 타고 여권을 받으러 갔는데 영수증을 보여주자 아직 처리를 안 했는지 기다리고 있는 나를 위해 이제야 부랴 부랴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비자 연장을 만들어 준다. 역시 어느 나라나 공무원의 업무처리 속도란.. 한참을 입구에서 나를 기다린 형님은 그 동안 입구에 있는 군인들과 친해졌는지 여권을 받고 돌아오니 같이 일을 하며 형님은 사람들 휴대폰 수거를 도와주고 있었다. 비자 연장을 받고 한시름 놓아 버스를 타고 어제 문이 닫혀 보지 못한 Vank Cathedral로 향했는데 들어가려니 입장료 30000IR에 사진을 찍으려면 20000IR을 더 내야 한단다. 실내가 아름답다고 적혀 있지만 과감하게 포기! 하루 3만원 여행자에겐 그 정도 가격이면 밥을 굶어야 한다. 형님이과 나나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그까지 교회하나 안 본다고 죽진 않는다며 다시 버스를 타고 돌아와 시내 근처 햄버거 가게에서 식사를 하고 앉아있는데 오후1시의 뜨거운 날씨로 나갈 엄두가 나질 않는다. 1시간을 그렇게 앉아 있다가 그늘진 곳을 찾아 낮잠이나 자자고 입을 맞추고는 근처 공원으로 향했고 그늘진 좋은 장소를 선택하고는 잔디 밭에 누워 2시간 정도 낮잠을 잤다. 그러다 살짝 깨어 눈을 떠 햇볕을 막아주는 나무 위에 새가 앉았는데 뭔가 느낌이 수상하여 잠에 깨려는 순간! 역시나 굵고 짧은 움직임으로 새똥을 정확히 나의 배 위로 날려 주시는데 잠에서 깨어 망정이지.. 허겁지겁 피하다가 형님까지 깨어 버렸고 그늘진 공원이라도 덥다며 엉거주춤 밖으로 나갔다가 조금이나마 시원한 인터넷 카페로 들어갔다. 2시간 정도를 아무 의미 없이 인터넷을 쓰고 계산 하려는데 카운터직원.. 계산을 똑바로 못해서 1시간 가격에 계산 하였다. 그리고는 우리는 밖으로 나가기 무서워 카운터 옆에 앉아 시간을 보내다가 마지막으로 Imamhomeni sq에 있는 궁전들과 모스크를 구경하다가 같은 호스텔에서 생활 하고 있는 친구가 근처에서 카펫가게 일을 하는지 우리를 초대했고 친절한 직원이 이란의 유명한 카펫에 대하여 이것 저것 설명을 해 주는데 몇 개의 박물관 보다 이 친구에게 이란의 카펫 역사와 그 안에 담겨있는 의미들을 듣는 게 더 도움이 되었다. 몇 시간을 카펫가게에서 설명을 듣고 사지도 않고 나가려니 미안했지만 시간이 없어 인사를 하고 돌아가는데 내일 테헤란에 도착하고 내 스쿠터 문제가 좋지 않으면 앞으로 만날지도 모르는 상황에 마지막이 될 수 있다고 저녁을 거하게 먹자며 BBQ치킨을 먹으러 갔다. 1마리에 1만원인 통닭을 먹는데 처음 입에 대는 순간부터 뼈만 보일 때까지 형님과 나는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는데 먹고 나서 생각해 보니 서로 아무 말없이 먹었던 게 몇 일 굶은 사람도 아닌데.. 저녁 8시가 지나서 숙소로 돌아가 배낭을 찾고 버스를 타고 터미널로 향했다. 터미널로 도착하면 이제 서로 떨어져서 회사마다 가격을 흥정하고 다시 만나 가장 저렴한 곳으로 가는데 몇 번 버스 여행을 하다 보니 이것도 적응이 된다. 5천원에 테헤란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 바로 잘 준비를 하고 눈을 감는다.. 내일이면 다시 속상할 일들이 생길 건데 아무튼 모든 일들이 잘 풀렸으면 하는 바램일 뿐이다..

 

7/18

[또다시 기다림..]

새벽4가 조금 넘어서 도착. 7시간 정도 걸린다는 Lonely Planet에 나와있는 시간보다 빨리 테헤란에 도착했고 아직 어둠이 깔려있는 터미널에서 피곤이 덜 가셨는지 터미널 의자에 누워 다시 잠이 든다. 이제 터미널에서 자는 것은 고급 숙소나 다름없다. 너무 많이 잔 걸까? 아침 7시에 눈을 뜨는데 처음 의자에 누웠을 때는 주위에도 잠을 자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군인으로 보이는 이란 사람이 우리를 깨우고는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그저 우리를 이상하게 바라볼 뿐이다.. 테헤란 남쪽 끝에 위치한 남부 터미널에서 한국대사관으로 가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아 서둘러 간단히 세수를 하고 형님을 깨워 같이 지하철을 타러 갔고 아침 출근하는 시간이라 이란의 지하철은 서울의 출근길과 같이 몸을 겨우 지하철에 박아 넣어야 간신히 지하철을 탈 정도였다. 30분 뒤 한국 대사관 근처로 도착했고 걸어가려면 30분 정도.. 거기다 배낭을 매고 있는 상황이라 시간을 더 걸릴게 분명했다. 지금 시간은 8시 50분 만나기로 한 시간은 9시에서 9시 30분. 결국 처음으로 택시를 타야만 했고 여러 택시 기사에게 물어 가격을 흥정한 뒤 4천원에 한국대사관까지 달려갔다. 9시 15분이 되어서야 겨우 한국 대사관에 도착했고 항상 내 문제로 이야기했던 대사관 직원분과 스쿠터 문제로 만났던 이란 사람을 만나 스쿠터 서류를 주고 다른 방법들을 모색하는데 일단 바로 이란 정부로 가서 다시 이야기해 보겠다고 말하고 혹시나 안 된다면 그저 가까운 나라에 수화물로 보낸 다음 그 서류로 이란을 떠나는 걸로 이야기를 하는데 나중에 이란 분이 알아보니 터키로 가는 수화물은 트럭한대에 스쿠터 만 싣고 가야 하는 상황이라 가격이 비싸고 사우디로 보내면 750달러라고 한다. 일단 그렇게 알겠다고 말하고 내 서류를 챙겨 이란 정부로 출발하는 이란 직원 분.. 나 때문에 이런 고생을 하면서도 항상 친절히 이야기해 주고 노력하는 모습이 그저 감사하기만 하다. 지금은 혼자서 한국대사관에 앉아 인터넷을 쓰며 오후 2시까지 온다는 이란 직원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해결이 잘 되기를 바랄 뿐이다.. 기다리는 동안 어느 한국 기업에서 대사관에 문의 차 찾아온 듯 한데 세분이 나의 여행에 관심을 보이시고는 한 분은 나에게 이란의 역사에 대하여 이야기해 주시며 역사의 중요성에 다시금 일깨워 주신다. 2500년 전 옆 나라인 이집트에선 채찍을 써가며 피라미드를 만들었지만 페르시아 사람들은 궁전을 만들기 위해 월급도 주고 심지어 지금 보다 더 좋은 복지로 여자가 임신을 하면 출산 기간과 그 이후 1년을 쉬게 했다는 말 또한 나를 놀라게 했고 아랍인이 점령을 하더라도 페르시아어를 버리지 않고 이어져 온 것과 단지 3, 40년 전 잘못된 혁명으로 인해 그들의 삶이 뒤바뀐 것만이 이란을 빈곤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또한 과거 과학, 수학이 이란에서 가장 번성했으며 단지 지금의 고위 세력들이 자신들만 독차지하고 있어 똑똑한 이란사람은 모두 해외로 가버렸기에 이런 상황이 초래되었으며 앞으로도 더 악화가 될 거라는 전망이란다. 거기다 내가 대학교 때 자주 이야기하던 매트릭스와 철학에 관련된 이야기도 하시는데 그 이야기를 들을 땐 나도 같은 말을 하시길래 깜짝 놀랐다. 돌아가시는 길에 나에게 명함을 주며 여행 잘하고 많을걸 배우고 한국으로 돌아오라며 안받겠다 했지만100달러를 선뜻 건네주신다. 이거.. 여행하면서 인복이 있는 건지 아니면 돈복이 있는 건지.. 2시가 되어 이란직원이 돌아왔고 예상대로 결과는 내일 나올 거라며 말해 주는데 표정이 그다지 밝지는 않다.. 그렇게 다시 인터넷을 쓰고는 괜히 숙소에 늦게 가서 자리 없을 까봐 일찍 배낭을 매고 출발 하려는데 대사관 행정관님이 오늘 이란 신문을 보여주며 어제 자헤단에서 폭탄 자살 테러로 27명이 죽고 300명이 중상을 입었다며 이래도 파키스탄에 가고 싶으냐고 물으시는데.. 비자만 주신다면..

돌아갈 때는 걸어서 가려고 하는데 한참을 배낭 매고 걸으니 물집 잡힌 발바닥에서 신호가 오길래 결국 버스를 타고 근처 지하철역으로 갔고 숙소에 도착해서는 방을 알아보는데 도미토리 방이 1개 남아 한숨 돌린다. 숙소에서 짐을 풀고 샤워와 입었던 옷을 손빨래하고 7시에 만나기로 약속한 형님을 기다리며 일기를 쓰다가 5시에 잠시 밖에 나가 산책하다 돌아오니 형님이 숙소에서 나를 기다렸는데 인도 비자를 받으러 간 형님은 일이 잘되어 비자를 받고 내 상황을 말하는데 아무래도 오늘 헤어져야 할 듯 하다. 형님은 혼자인 나를 두고 가려니 걱정이 되는지 쉬라즈에서 비행기 탈 때까지 기다리고 혹시나 잘못되면 인도에서도 기다리겠다고 하시는데 서로 메일로 연락을 하기로 했고 지하철까지 마중 나갔다가 마지막이 될지 모를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테헤란을 떠나면서 100달러 환전한 돈을 모두 써버려서 다시 환전하러 가는 길에 노래를 들으며 나 홀로 생각하는데 형님과 같이 찍은 사진 한 장 없다는 게 그저 웃기기만 하다.. 다시 혼자가 되었다. 인도에서 다시 형님과 여행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다시 혼자가 되었다.. mp3를 들으며 노을 진 테헤란 거리를 홀로 걷는데 형님과 함께한 시간을 떠올려 본다. 주위에는 수많은 낡은 오토바이가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차들 사이를 뚫고 지나가며 여기저기서 경적 소리가 들리며 거리에서는 반바지를 입은 나를 보며 신기해 하는 눈빛과 말을 거는 이란사람들이 나를 스쳐 지나가고 나는 정처 없이 테헤란 시내를 거닐고 있다. 내일 일이 어떡해 될지 모르는 상황이라 일단 50달러만 환전하고 돌아오는 길에 오늘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생각에 햄버거를 하나 사먹고 숙소로 돌아와 책을 읽으며 오랜만에 느끼는 혼자의 시간을 달래 본다. 내일이면 확실히 결과가 발표 될 것이고 한국대사관으로 가는 길에 모든 짐을 들고가 일이 잘되면 바로 쉬라즈로 일이 좋지 않으면 바로 터키로 출발할 생각이다. 일기를 쓰며 잠시 다이어리를 넘겨 세계지도를 보는데 이제야 약 1만km를 달려 반을 온 것 같은데 파키스탄 비자 하나 때문에 스쿠터를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파온다. 앞으로 약 1달 남은 내 여정. 어떡해 여행이 흘러가고 마무리가 될지를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이란까지가 스쿠터 여행의 마지막이 될 듯 싶다. 그리고 반은 배낭여행으로 바뀔 듯 한데 정말 무지하게 여행을 시작해서 여기까지 온 것 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스스로에게 위로 해 본다. 내일! 을 위해..

 

7/19

[하늘은 나의편]

넉넉하게 잠을 청하고 10시가 되어 check out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샤워를 하고 혹시나 좋지 않는 소식을 들으면 바로 출발을 위해 모든 짐을 챙긴 뒤 첫날 Mashhad Hostel에서 만났는데 또 보게 된 대만 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고 대사관으로 향했다. 결과가 어떡해 나오든 그 결과에 승복하고 바로 쉬라즈로 가든 아니면 터키로 가든 대사관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로 향하는데 약 1만km를 내가 지금 짊어 지고 있는 –배낭, 텐트, 매트릭스, 오토바이 사이드 백- 짐들과 나를 싣고 달려온 스쿠터에게 미안함 마저 든다. 고작 지하철까지는 걸어서 10분인데 무거운 짐들로 온몸에 땀이 흥건해졌다. 지하철을 타고 Mirdamad역까지 그리고 택시를 타고 대사관에 도착할 땐 점심시간이라 대기실에서 인터넷을 쓰며 시간을 보내는데 결과가 나쁠 상황에 대비하여 airarabian 비행기 티켓 사이트를 열어두고 인터넷을 쓴다. 몇 시간의 시간이 흐르고 내 스쿠터 처리에 모든 노력을 쏟아 부으신 이란 직원인 Adibi가 나타나 이란정부가 스쿠터를 받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한다! 순간 어찌나 기쁘던지 Adibi의 고생을 알고 있는지라 꼭 안아주고 싶었지만 마음 한 구석에선 정말 스쿠터와 헤어져야 한다는 소리에 가슴이 아파온다.. 내 여정의 절반을 함께 해준 쥬딩이.. 갑자기 Adibi에게 손님이 찾아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주차되어있는 쥬딩이에게 다가가 마지막 키스를 했다. 너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에 파키스탄 비자를 받지 못하여서 이렇게 된 일이라 오히려 스쿠터에게 더욱 미안 했다. 그리고 솔직히 여행을 하기 전부터 언젠가는 스쿠터를 포기해야 할 상황이 올 줄은 알았지만 이란이라는 나라에서 포기할 줄은 몰랐다. 이란.. 내 유라시아 횡단 중 정말 잊지 못할 나라가 될 것 같다. 오늘 이란정부의 수락을 받은 지라 아직 서류화가 되지 못하여 대사관 레터만 받고 남은 서류는 오늘 버스로 쉬라즈로 간 뒤 Fax로 받기로 이야기 하고 형님이 있는 쉬라즈로 향한다. 처음부터 돈도 구해주시고 매일 걱정 해 주신 유인봉 행정관님, 이란 정부에게 매일 같이 Push해준 Adibi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며 마지막이 되고픈 인사를 나누고 대사관을 나오는 길에 경비에게 이젠 필요 없고 무게만 나오는 텐트를 선물하고 터미널로 향했다. 한때 스쿠터 문제로 서로간의 입장 차이에 얄미울 때도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으로 볼 때의 문제이다. 아직 공항으로 가서 서류를 보여주고 출국 심사를 완벽하게 해야만 이란에서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이기에 긴장을 풀 수는 없다. 그렇게 걸어가다가 이란 사람과 함께 택시를 5000리알에 근처 지하철로 간 뒤 터미널에 도착! 터미널로 가서 바로 가장 저렴한 티켓을 구입하고 햄버거로 오늘 첫 끼니를 해결한다. 혼자서 터미널까지 오는데 다시 형님과 재회도 하겠지만 그간 형님에게 배운 배낭여행이 스스로 잘 터득 하였는지 이젠 혼자 다녀도 될 듯 하다. 그렇게 쉬라즈행 버스에 몸을 싣고 출발한다. 무사히 출국 심사를 하고 인도 땅을 밟기를 혼자 기원해 본다. 출발 후 2시간을 잠들다가 휴게소에 들린 뒤 잠을 깨어 차창 밖을 보며 이때까지 여행을 되새겨 본다. 60일간 어떡해 달려 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제 스쿠터와의 헤어짐.. 한 달 정도 남은 나의 여정.. 그리고 가까운 나의 미래 또는 먼 나의 미래를... 확실한 건 두렵진 않다. 이 여행을 통해 정말 성숙하고 있는 걸까? 서둘러 즐기고 싶다. 미래를 위해!

 

7/20

쉬라즈로 가는 버스에서 이란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친해져서 오는 내내 심심하지 않고 이들과 영어로 이야기하며 올 수 있었다. 14시간의 버스 행으로 아침8시에 도착! 일단 바로 형님과 약속한 Lonely Planet에서 가장 저렴한 숙소로 찾아가는데 함께 왔던 이란 친구들이 같이 찾는데 도와주겠다고 한다. 거기다 혹시 괜찮으면 자기 집에서 하루 머물러도 괜찮다고 하는데 정중히 거절 한다. 어차피 형님과 만나면 내일 바로 비행 준비와 이것저것.. 이런 상황에선 혼자서 여행을 하면 가볍게 가겠지만 둘이서 여행을 하면 상황이 복잡해 진다. 친구들이 저렴한 택시를 골라 숙소로 향했는데 도착한 숙소에는 다른 간판이 있고 들어가보니 한달 전에 숙소가 없어 졌고 지금은 군인들이 머물고 있다고 한다.. 일단 근처 숙소를 돌아보며 한국 사람을 봤냐고 물어 봤지만 대답은 외국인조차 못 봤단다.. 이란친구들에게 미안해 그냥 먼저 가도 된다고 말했지만 그래도 끝까지 찾는데 도와 주고 싶다며 뭐가 필요하냐는 말에 어제 형님께 결과 나면 바로 메일을 준다고 해서 메일을 보냈는데 혹시 확인했을 까봐 인터넷을 써야겠다는 말에 근처 인터넷 카페로 가는데.. 이건 뭐.. 운명일까? 인터넷 카페에 들러 한글 프로그램이 없어 노트북을 꺼내어 쓰려는데 카운터 옆에 프린트된 몇 장의 종이를 보다가 나와 같은 비행기 티켓을 보고 종착지를 보는데 인도라고 적혀있다. 혹시나 해서 이름을 보는데 형님의 이름이! 순간 웃음이 나왔고 이란 친구들에게 이 티켓의 주인이 내가 찾는 사람이라고 말하니 주인에게 물어보는데 더 웃긴 이야기를 들려준다.. “뭐~ 어떤 거지가 와서 프린트 값을 깎아달라는데 그 놈이 한국 놈이야?” 대충 이런 느낌이었고 친구들도 내게 이와 비슷하게 번역을 해준다. 서둘러 메일 확인을 하니 역시 형님이 메일을 보냈고 내용에 머물고 있는 숙소 이름을 남겼고 인터넷 카페 주인에게 물어보니 바로 앞이라고 한다. 다시 짐을 매고 숙소로 향했는데 마침 숙소에서 나오는 형님. 우리는 서로 보자마자 반가워 포옹을 하고 이란친구들을 소개시켜 준 다음 친구들은 테헤란에서 공부를 하다 고향으로 돌아온 지라 집에 부모님이 기다리신 다며 마지막 인사로 헤어졌다. 나는 먼저 숙소 check in을 하고 짐을 푼 뒤 샤워를 마치고서야 테헤란에서의 상황을 설명하고 일단 배낭여행에 불필요한 짐들을 한국으로 먼저 붙이기 위해 우체국으로 향했다. 쉬라즈 중앙우체국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13kg을 붙이고 돌아오는 길에 점심 식사로 햄버거를 먹고 먼저 쉬라즈에서 70km떨어진 PERSEPOLIS로 향했다. 역시나 하루에 3만원 여행자이므로 일단 버스로 가까운 곳으로 향한 뒤 다시 버스를 타려고 했는데 좋은 이란 사람을 만나 합석하는 택시를 타서 PERSEPOLIS로 향할 수 있었다. 처음 PERSEPOLIS로 도착하기 전에는 여기가 어디인지도 모르고 그냥 SHIIRAZ에서 가장 유명한 유적지라길래 따라갔을 뿐인데 도착하고 보니 여기가 바로 영국의 대영박물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유적 중 하나이며 대사관에서 만난 어느 한국 기업 어르신이 말씀해 주신 약 2500년 전 옆 나라인 이집트에선 노예를 채찍질 하며 지었던 피라미드를 지었지만 페르시아에선 현재보다 더 월등한 월급과 복지를 갖춘 상태에서 지은 왕궁이 PERSEPOLIS이었던 것이다. PERSEPOLIS에 도착하고는 가장먼저 느낀 점은 황량하다는 것. 그리스의 아테네 신전을 가보면 기둥만 있듯이 PERSEPOLIS에도 그저 기둥의 흔적만 남아 있다. 도착했을 땐 12시의 뜨거운 햇볕에 그늘 한 점 없이 관람을 해야만 했다. 2500년 전 어떡해 이렇게 거대하고 정교하게 지었는지 상상이 안 갈 정도로 바위의 절단 면이나 그 바위들을 하나하나 맞춰 연결된 점이나 모든 것이 놀라웠다. 입구에 대영박물관에서도 볼 수 있는 얼굴은 사람이요 몸은 말이며 날개가 있는 수호신이 수천 년의 세월을 말해준다. PERSEPOLIS를 관람하면 할 수록 역시나 역사에 무지한 내 자신에게 한심함을 느끼면서 문화재의 소중함을 느낀다. 차라리 자연에 의해 문화재가 파괴되었다면 모르겠지만 PERSEPOLIS의 문화재는 영국이나 프랑스 등 유럽 여러 나라 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그만큼 여러 나라들이 침략하며 PERSEPOLIS의 중요 문화재를 약탈했다는 말. 원래 있어야 할 장소에 있지 못하고 다른 곳에 전시되어야만 하는 상황도 아쉬우며 PERSEPOLIS주위에 아직 복구가 안되고 바닥에 남아 있는 잔해들 또한 아쉬웠다. 중간 중간에 관람하면서 영어로 설명이 되어 쉽게 이해 할 수 있었으며 터키 이집트 등 먼 나라에서 페르시아에 곡물이나 말, 낙타, 양 등을 가져오며 과거 페르시아의 위용도 느낄 수 있었다. 다만 특이한 점은 페르시아 왕에게 바치는 재물 중 노예는 없다는 것. 그만큼 페르시아 세계에선 인격이 중요시되었다고 생각 할 수 있겠다. 무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PERSEPOLIS를 한 바퀴 돌고는 그것도 모자라 PERSEPOLIS를 한눈에 볼 수 있게 작은 언덕으로 올라가 사진을 담고서야 쉬라즈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는 역시나 우리도 지쳤는지 입구에서 택시를 타고 가기로 하는데 적정 가격으로 4만 리알에 쉬라즈로 돌아왔고 내일까지만 쓸 돈을 환전한 뒤 다시 숙소로 돌아가 샤워를 하고 저녁을 먹은 뒤 숙소 근처에 있는 Arg-e Karim Khan의 야경을 찍으러 갔다. 쉬라즈의 중앙 광장에 위치한 Arg-e Karim Khan은 옛 성으로 내부에 목욕탕도 있는데 성 네 모서리에 탑이 있는데 그 목욕탕이 있는 탑만 침몰했는지 살짝 기울어져 있는 게 인상 깊었다. 해가 저물고 저녁이 찾아오자 쉬라즈가 붐비기 시작한다. 거리에 사람들이 서서히 나오고 잔디밭이나 벤치에 앉아 여유를 즐기는 이란 사람들. 우리도 광장에서 사진을 찍다가 시샤를 하는 사람들을 보고 형님이 시샤를 하자는 말에 Arg-e Karim Khan앞 잔디밭에 누워 이란의 마지막 저녁 이길 바라며  이란의 여유를 즐겨 본다. 잔디에 누워 형님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번의 화제는 서로의 미래에 관련되어 이야기를 해 본다. 그리고 어떡하면 진정으로 평등한 사회를 말들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과연 모든 사람들이 평등한 세상이란 어떤 의미인지.. 이 여행이 그 대답까지 찾아 줄 수 있을까? 그렇게 이란의 마지막 저녁은 여유롭게 흘러간다.

 

7/21

[유전무죄 무전유죄 & Go to India!]

아침 일찍이 8시에 눈을 떠서 인도 여행에 경험이 있는 형님이 인도에서 잘하면 샤워도 자주 못한다는 말에 오랫동안 샤워를 하고 짐을 챙겨 밖으로 나와 공항으로 가기 전 근처 햄버거 가게에서 아침을 해결한 뒤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향한다. 쉬라즈에서 공항으로 가기 위해선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 하며 2시 출발이지만 스쿠터 문제와 아직 서류를 모두 받지 못하여 아침 10시에 공항에 도착하고선 대사관에서 미처 받지 못한 팩스를 받기 위해 공항 information center에서 팩스번호를 받고 전화를 하려는데 이놈들 전화 한 통만 쓰자니까 전화카드를 사라고 한다..;; 얼마냐고 물어보니 4만리라.. 젠장 2배나 비싸다 결국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전화 한 통을 쓰려고 했지만 마땅히 쓸만한 곳을 찾지 못했고 시간이 다가와 바로 check in으로 들어갔다. 그래도 일단 미리 받아 놓은 대사관 레터가 있어서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기면 그때 전화를 하고 팩스를 받아도 될 듯 싶었다. 과연 이란을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까 조마조마한 시간들이 흘렀고 출입국 사무소에서 심사를 보는데 역시나 내 여권을 보다가 비자에 적혀있는 스쿠터 관련 글을 읽고는 스쿠터에 관련해서 물어본다. 그리고는 이란정부에게 줬다고 말을 하고 서류를 보여 주려고 꺼내는데.. 서류의 도장만 보고는 그냥 여권에 도장을 찍어 준다.. 어라.. 이거 너무 쉽게 들어 왔잖아..;; 여기서도 웃긴 이야기가 있는데 전날 하루 종일 혹시나 출입국 심사에서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테헤란으로 돌아가서 터키로 넘어가야 한다며 걱정하고 있는 나를 함께 걱정해주던 형님이 check in을하고 출입국 사무소에서 심사를 하는데 형님은 5번, 나는 3번에서 심사를 보았고 나보다 훨씬 문제가 없는 형님이 먼저 심사를 보고 들어 갈 줄 알았는데 나는 그냥 스쿠터에 잠시 질문을 하고는 바로 도장을 찍어주고 들어가라 하고 형님 쪽은 이름을 몇 번이나 물어보고 컴퓨터에 입력하기를 몇 번 기다리다 지쳐 안에서 구경하고 화장실 들렀다 왔는데도 아직 형님은 들어오지 못하고 5번 앞에 서서 기다리고 계신다. 어째 입장이 바뀐 것 같은 상황에서 무슨 일이냐며 물어보는데 5번 녀석 업무 처리 속도가..;; 공항에서 이렇게 줄을 잘못 서게 되면 고생 꽤나 한다.. 나야 다행이지만..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심사를 무사히 마치고 SHARJAH행 비행기에 올라탄다. 드디어 이란을 벗어나는 것이다. 그것도 비행으로.. 유라시아 횡단을 하면서 제발 비행기만은 피하고 싶었는데.. 물론 독일에서 운 좋게 만난 친구들로 경비행기를 탄 경험이 있지만 이런 비행기는 정말 탈 줄 몰랐다.. 그리고 이 비행기로 정말 스쿠터와 헤어지는 것이다. 내 유라시아 여정 반을 함께해준 스쿠터.. 이란에서 아쉬움이 남지만 여기까지가 되었다.. 어떡해서든 스쿠터로 유라시아 횡단을 하려고 바둥거렸지만 덧글에 –님의 말과 같이--------- 그래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여기까지 인 것 같다. 비록 스쿠터로 마지막까지 유라시아횡단을 마쳤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 여행은 스쿠터 유라시아 횡단이며 개인적으로 그렇게 정의 내리고 싶다. 배보다 배꼽이 크다고 했던가 물론 정들었던 스쿠터를 그냥 이란정부에게 주는 것도 몹시 마음이 아프지만 1600달러라는 운반 비용은 현재 나의 능력으론 역부족이다. 그래 이제부터는 배낭여행의 시작이나 또한 나 홀로가 아닌 여행에서 만난 형님과 함께하는 배낭여행이다.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기고 벌어질지 모르지만 하나의 여행으로 혼자서의 여행, 스쿠터 여행, 배낭 여행, 함께하는 여행 등 많은걸 체험하고 느껴 보는 것 같다. SHIRAZ에서 UAE의 SHARJAH까지는 약 1시간 비행으로 페르시아만 을 넘어 있다. 비행기에 올라타자마자 내리는 느낌으로 UAE에 도착하고는 바로 30일 무 비자를 받고 30km정도 떨어져있는 두바이를 둘러보기 위해 6시간뿐인 우리에겐 택시를 선택 할 수 밖에 없었다. 차라리 편하게 DUBAI를 둘러보고 다시 SHARJAH공항으로 돌아오는 걸로 200~300AED로 해결보고 싶었다. 공항 앞에 여러 택시가 있었고 택시기사에게 가격 흥정을 하는데 먼저 한 사람에 50달러(183AED)를 환전하고 한 택시 운전사가 200AED로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는데 나는 그냥 타버리는데 형님은 약간 의아해 하신다. 그렇게 택시는 출발하고 운전사와 이것 저것 이야기를 하다가 이집트 사람이라는걸 알고는 형님이 이거 뭔가 느낌이 안 좋다고 하고는 다시 물어본다. 확실히 두바이 둘러보고 공항 돌아오는데 200AED맞냐고?.. 젠장.. 이 녀석 아까와는 말이 다르게 미터로 계산한다고 말한다. 젠장 공항을 벗어나 두바이로 가는 길에 세우니 마니 실랑이를 벌이다가 그냥 버즈두바이 근처에서 내리기로 했다. 가는 내내 사기 당했다며 식식 거리는 내게 앞으로 인도에서도 이런 일이 많을 거라며 이건 가벼운 일에 불과하다는데 큰일이다..;; 결국 버즈 두바이에 97AED로 계산을 하고 내리는데 끝까지 할 말은 하고 내린다. 젠장 할 안 그래도 어쩔 수 없이 탄 택시인데.. 먼저 우리가 도착한 곳은 한국기업이 만든 세계 최고 층 높이인 버즈 두바이. 아직 내부 인테리어가 마무리 되지 않았는지 외부는 완공되었지만 여전히 공사 중인 걸로 보인다. 900m가 넘은 높이의 버즈 두바이 실제로 봐도 고개를 한참 꺾어 올려다 봐야지 그 높이를 알 수 있다. 사실 우리가 두바이에 왔을 때 정확히 두바이에 대하여 알고 있는 정보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거라곤 버즈 두바이와 칠성호텔.. 버즈 두바이를 보고 사진도 담는데 공항에 내릴 때 외부온도가 40도라는데 이란보다 더 더운 느낌은 아마 습도 때문 일 것이다. 엄청난 습도에 가만히 서있어도 땀이 흘러 내리며 사막한가운데 도시인지라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다. 한 낯의 태양아래 걷고 있는 사람이라고는 우리 둘 뿐이다. 다들 차 안에서 창문을 다고 에어컨을 틀며 달리는 차들 뿐. 걷다가 걷기를.. 우린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는데 땀에 흠뻑 젖은 옷이며 얼굴을 보고는 그냥 아무 버스나 타면 구경이나 하겠지 생각하고는 버스를 타는데 이거.. 무조건 교통카드가 있어야 된단다.. 어디서 구입을 하냐고 기사에게 물어보니 바로 앞 마켓을 손짓하는데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보듯 바로 달려가는 우리 그리고는 문을 열자마자 “아~!!”하는 탄성과 온몸으로 느껴지는 에어컨 바람. 주저 없이 버스카드는 둘째치고 음료수부터 집어 든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보는데 버스카드는 한 사람에 20AED이고 충전까지 하면 총30AED. 차라리 택시로 근처 칠성호텔에 내리고 근처 해변에서 시간을 보내고 바로 SHARJAH공항으로 돌아가기로 이야기를 맞추고는 마켓에 앉아 음료와 도넛을 먹으며 더위를 잠시 식히고 주위를 둘러보는데 거리에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모두 여기 모여 있는가 보다. 한눈에 봐도 여러 나라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대부분 영어를 쓰며 의사소통을 한다. 골프채를 들고 다시는 사람들, 멋진 정장을 입고 전화를 하며 바쁘게 걷는 사람이나 작은 가게에 앉아 손님을 기다리는 동남아시아 사람으로 보이는 직원이나.. 이란과는 너무 다른 분위기 이다. 그냥 이렇게 지나가는 사람들은 바라보는데 내 눈에는 빈부격차가 보인다. 이렇게 사업차 온 사람들은 여유롭게 항상 에어컨 공간 안에 생활을 하고 정작 UAE시민들은 더운 야외 공사현장에서 땀 흘리며 이들을 위해 또 다른 에어컨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무슨 차이인 걸까? 어떤 차이가 이런 차별을 가져오는 걸까? 단지 이들의 지식차이? 아니면 태생의 차이? 자기 투자의 차이? 그렇게 말하기엔 너무나 다른 삶에서 하지만 같은 지구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같은 인가이다.. 한참을 그렇게 마켓 안에서 지나가는 그들과 밖에서 일하고 있는 그들을 번갈아 가며 쳐다본다.

이란에서 비행기에 올라 바로 시간조정을 하는데 분명  UAE가 이란보다 30분 빨라 시간을 설정하고 도착하는데 UAE의 모든 사람들은 이란보다 30분 느린 시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위치상으로도 영국을 기준으로 더 동쪽에 있으며 컴퓨터 상으로도 30분 빠른 게 분명한데 뭐가 잘못 된지는 일기를 쓰고 있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렇게 마켓에서 다시 나와 택시를 타고 칠성호텔로 향했다. 한국에서 영국으로 향할 때도 아랍에미레이트 항공을 이용하여 두바이를 경우하고는 돌아올 때는 STOP OVER를 신청해서 두바이 여행에 잠깐 알아 본적이 있는데 두바이에는 특별히 관광지는 없다. 대부분 아름다운 호텔이 관광지이며 특별히 본다면 사막투어 정도가 전부이다. 하지만 사막투어까지는 시간이 없는 관계로 버즈 두바이를 건립하기 이전 DUBAI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칠성호텔. 옥상에 있는 테니스 코트에서 타이거 우즈가 스윙을 한 장소로도 유명하다. 호텔내부로 들어가려면 예약을 해야 하는데 안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다고 한다. 우리야 당연히.. PASS! 그냥 외관만 보고 근처에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바다를 끼고있는 칠성호텔 바로 옆에 해수욕장이 있으며 도착했을 때 몇 명의 사람들이 해수욕을 즐기고 있으며 석양이 내려 붉게 물든 도시의 두바이로 변하고 있었다. 에메랄드 색의 바다는 바로 신발을 벗어 던지게 만들었고 유라시아 여행에서 영국과 프랑스를 건널 때 이후로 처음 바다를 보는 것 같다. 한참을 해변을 걸으며 일몰을 감상했고 셔터를 눌러 대었다. 그리고는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파도소리에 귀 기울여 본다. 그리고 7시쯤 아틀란티스를 보고 갈까 하다가 아직 완공도 안되었고 거리도 있다 기에 그냥 공항으로 향한다. 가는 길에도 역시 택시를 타고 가는데 이번 택시 기사는 네팔출신에 2년 전부터 두바이에서 일을 시작했다는데 택시회사에서 주는 차로 하루 12시간 일을 하며 월급도 그다지 좋지는 않은 걸로 보인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 예쁜 장소가 있으면 잠시 세워주고 다시 출발하며 두바이에 관하여 이야기를 해 주는데 말하는 거며 태도가 처음 탔던 기사와 너무 달랐고 친절함이 보였다. 저녁8시 퇴근시간인지 교통체증이 살짝 있다. SHARJAH공항에 도착해서 바로 check in을 하고 수속을 밟는데 엄청난 사람들로 시간이 한참 걸리는데 둘 다 더위에 지치고 배가 고파 신경이 날카롭게 기다리는데 오늘따라 줄 서는 운이 안 따라 주는지 어째 우리가 서는 줄마다 느림보다. 1시간 정도를 남겨두고 모든 수속을 마치고 음식코너로 달려가 저녁을 먹는데 또다시 먹는 내내 아무 말없이 그저 먹기만 한다. 식사를 마치고 비행기에 오르기 전 남은 돈 AED와 이란 돈을 인도 화폐로 환전하고 인도 화폐가치를 계산하고는 비행기에 올라탄다. 그러고 보니 동유럽 때도 하루에 세 나라를 지나왔는데 오늘도 세 나를 보게 된다. 저녁 11시가 지나서 인도 DELHI행 비행기에 올라 출발하는데 내일은 새벽 4시에 인도에 도착해서 공항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가 바로 숙소에 check in을 하고 파키스탄 대사관에 들러 비자 신청을 하는 것이다. 그럼 이제부터 배낭여행을 시작해 보는 것이다. 그리고 홀로가 아닌 둘이서 여행을 하는 것이다. 여행이 또 어떡해 흐를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설레고 기대된다. 이란의 페르시아와 UAE의 아라비아를 떠나 이젠 인도의 힌디로 향하는 여정. 그곳에는 또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 경비 -

7/2 – 0.5TL 빵

7/3 – 15TL 기름   16.7TL 음료 빵   5.5TL 담배   16TL 기름   17.5TL 기름

7/4 – 15TL 기름   21TL 기름   7TL 저녁

7/5 – 300TL 이란보험   27500IR 음료 빵   20000IR 기름

7/6 - 17500IR 기름   15000IR 기름

7/7 – 20000IR 기름   42000IR 점심

7/8 , 7/9 – 지출 무

7/10 – 70000 숙박

7/11 – 500IR 버스   4500IR 2회 지하철   25000IR 점심   2500IR 지하철   110000IR 버스

7/12 – 10000IR 담배   5000IR 짐 보관   27000IR 점심   120000IR Yazd 버스   1000IR 음료   26000IR 피자   3000IR 음료   1000IR 음료   6500IR 물 빵   500IR 버스

7/13 – 5000IR 수박   13000IR 점심   2000IR 입장료   1500IR 아이스크림   70000IR 숙소   10000IR 인터넷   50000IR 저녁   1000IR 음료   500IR 버스   8000IR 담배

7/14 – 3500IR 엽서 우표   20000IR 점심   2400IR 음료   40000IR Esfahan 버스   10000IR 음료   20000IR 모자   3000IR 음료

7/15 – 1000IR 버스   5000IR 음료   200000IR 비자 연장 비   500IR 복사   3000IR 비자연장 서류   16000IR 음료   11000IR 전화   37000IR 점심   1000IR 버스   18000IR 간식   4000IR 아이스크림   20000IR 전화카드   5000IR 아이스크림   5000IR 음료

7/16 – 32000IR 아침   3000IR 음료   12500IR 인터넷   18000IR 시샤   5000IR 아이스크림   4000IR 음료   40000IR 저녁   2500IR 음료

7/17 – 7000IR 빵 우유   80000IR 숙박   4000IR 음료   1000IR 버스   5500IR 담배   19500IR 점심   16000IR 인터넷   43500IR 저녁   3000IR 음료   50000 Tehran bus

7/18 – 4000IR 2회 지하철   40000IR 택시   3000IR 음료   15000IR 햄버거   6000IR 물 음료

7/19 – 3000IR 전화   70000IR 숙박   120000IR SHIRAZ BUS   2500IR 지하철   45000IR 택시   5000IR 택시   2500IR 지하철   2000IR 음료   18000IR 햄버거   10000IR 간식

7/20 – 70000IR 숙박   30000IR 택시   345000 소포   2000IR 음료   15000IR 점심   5000IR 버스   5000IR 택시   5000IR 입장료   5000IR 입장료   10000IR 음료   20000IR 택시   10000IR 음료   24000IR 저녁   10000IR 아이스크림

$30환전 312000IR

7/21 – 12500IR 아침   2500 택시   10000IR 음료   10000IR 간식   157AED(약$41) 택시 간식 저녁

$50환전 183AED   80000IR환전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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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wonddolggi
:

 (연동 문제로 24, 25번 글은 http://blog.naver.com/kwonddolggi 에서 확인 바랍니다.)

안녕하십니까 똘끼입니다..

우선 여행기에 앞서 말씀 드려야 할거 같아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우선 이전에 제가 도움을 부탁 드린 글에서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셔서 정말 감사 드립니다..

저 스스로의 여행에 이렇게 지원을 해 주시고 도움을 주셔서 앞으로 어떡해 이 도움을 갚아야 할지 모르겠네요..

다시 한번 감사 드립니다..

그리고 저는 아직 이란에 있고 현재 Yazd라는 도시에 와있습니다.

일단 갑자기 하는 인터넷으로 얼마 못할 것 같아 이때까지의 이야기를 글로만 작성하고 올리려 합니다.

아마 앞으로 아시아 쪽 인터넷의 사정이 좋지 않아 일기로 작성한 글을 바탕으로 작성하고 사진은 추가로

몇 장씩 올리는 형식으로 여행기가 진행 될 듯 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희망으로 여행기의 제목은 계속해서 스쿠터 유라시아 횡단으로 이어 나갔으면 합니다.

 

7/3

[goodbye 터키]

어제 경남대 교수님과 맥주 한잔에 이야기를 나누다 Gokhan의 집으로 갔고 오늘 아침 7시쯤 Gokhan도 여자친구와 여행으로, 나도 이란으로의 출발을 위해 일찍 집을 나섰다.

집 앞에서 우리는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누고 그렇게 헤어졌다.

그렇게 앙카라와도 헤어졌다..

그래.. 앙카라를 등지고 드디어 이란을 향해 달리는 것이다!

최대한 빨리 이란으로 가기 위해 그리고 그 동안 많이 달리지도 않았기에 오늘 최대한 많이 달려야 하는 것도 알고 있다.

주위의 멋진 풍경이 보여도 잠시 멈추어 사진을 찍기에도 시간이 없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E88 도로를 종횡무진 달렸더니 결국 야간 주행까지 하게 되었다. 터키는 동쪽을 갈수록 그저 넓은 초원에 사막도 보였고 도시의 개발이 더디 다는걸 느낄 수 있었다. 거기다 동쪽으로 가면서 날씨는 어찌나 더운지 달리는데도 헬멧 안으로 흐르는 땀에 진이 빠질 뿐이다.

혼자서 계속 스쿠터를 타고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무의식의 세계로 빠질 때도 있고 나 홀로 생각을 할 시간도 있지만 무엇보다 주위의 트럭에 조심해야 한다. 터키로 들어오면서 부쩍 자가용 보다 트럭이 많아 지는 것이 역시나 실크로드라는걸 말하는 듯 하다. 그래.. 나는 지금 수 천년 전 이름도 모를 대륙들이 만나 물건을 사고 팔던 실크로드 위를 달리는 것이다.

계속해서 달리기를 5시간이 지났을까 길 옆으로 자전거가 보이는데 순간 내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1단 자전거로 보이는 자전거 여행자 위로 영국 국기가 휘날리는 것.

설마 영국 사람일까 싶어 지나가면서 보는데 내 스쿠터 번호판을 보고는 영국 스쿠터임을 알았는지 나에게 손을 흔들며 소리는 친다. 그제서야 영국사람임을 알고 길 옆으로 스쿠터를 멈춰 세웠고 나는 1단 자전거에 몸을 싣고 중국까지 달린다는 소리에 놀랐고 그는 영국에서 공부를 하다 스쿠터로 유라시아 횡단으로 고향까지 간다는 말에 놀란다.

서로가 여행자임을 알기에 우리의 이야기는 짧았지만 여운은 오래 동안 남았다. 같이 영국에서 출발했지만 나는 스쿠터, 그는 자전거 그것도 1단 자전거이다.. 역시 세상에는 많은 여행자가 있고 각각의 특별한 여행 이야기가 있는 것이다.

영국 사람과 헤어지고 기름이 없어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넣는데 잠시 멈춰 세울 때마다 나에게 보이는 관심은 이제 익숙하다. 그런데 특별히 한 명의 터키인이 나에게 다가와 영어로 대화를 하는데 그는 룩셈부르크에서 일을 하다가 휴가로 고향에 내려왔는데 나에게 점심을 대접하겠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하루 종일 달리기만 했는데 잘되었다 싶어서 냉큼 고맙다고 하며 주유소 옆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얻어먹으며 그의 룩셈부르크 생활을 들을 수 있었다.

점심을 먹고 챠이를 마신 뒤 더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는 나로는 미안하다는 말로 그렇게 헤어졌고 그렇게 쉼 없이 달리다가 결국 해가 지고 잘 곳을 찾는데 앙카라에서 오랫동안 편히 쉬었으니 오늘은 캠핑을 하려는데 마땅히 캠핑할 장소를 찾지 못하였다. 주유소도 100km이상 떨어져 있고 다들 마땅히 텐트를 치기엔 역부족 이었다. 불빛 하나 없는 터키의 동쪽 사막에서 영국에서 온 50cc의 작은 스쿠터가 어둠을 가르며 달리는데 문득 아까 주유소에서 만나 점심을 얻어먹은 터키인의 말에 잘 곳이 없으면 아무 모스크에 들어가서 하루 밤을 부탁하면 될거라는 말에 달리다가 어느 작은 시골에 도착했고 시골의 모스크로 향했다. 저녁 10시가 지난 시간이지만 몇 어르신들이 모스크에서 알라에게 기도를 드리고 있었고 비록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순순히 내 부탁을 들어 주셨다. 나는 텐트를 치라는 걸로 이해하고 서둘러 모스크 앞 마당에 텐트를 치는데 어르신이 나와 모스크 안에서 자라며 아량을 베풀어 주셨다. 오늘 총 14시간 이상의 주행으로 400mile 약 640km를 하루 만에 달린 것이다. 역시나 몸은 녹초가 되어 기도를 드리던 어르신들이 돌아가고 양치질만 하고 바로 침낭 안으로 들어가 눈을 붙였다. 오늘 달리는 내내 이란으로 들어가면 드디어 내 여정의 반을 온 것이다. 즉, 1만km 이상을 왔다는 말! 그리고 다짐한다. 분명히 이란부터 내 여행에 문제가 많을 것임에 분명하다고.. 그리고 여행을 출발하기 전 이란이나 파키스탄에서 스쿠터를 포기해야 하는 것도 어느 정도 염두하고 있다는 것도.. 하지만 이란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그리고 스쿠터를 포기하더라도 절대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을 스스로 해본다..

시골 앞에 개울이 있는지 물 흐르는 소리와 부엉이가 우는 소리가 자장가로 들려오며 눈이 감긴다.

 

7/4

이틀 만에 앙카라에서 터키 동쪽 끝인 도우베야짓으로 가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 때문일까 몸은 피곤해도 8시 전에 눈을 뜨고 서둘러 짐을 꾸린 뒤 간단히 세면을 하고 출발하려는데 어제 모스크에서 기도 드리던 어르신 중 한 분이 바로 옆에 사시는지 나보고 아침밥을 먹고 가라며 손짓을 하신다. 터키의 어느 시골에서 먹는 진짜 터키 식 아침이다. 장작불에 빵을 살짝 구워 버터와 치즈를 발라 먹는데 아주머니와 딸 그리고 아들은 이스탄불에 사는데 할머님이 편찮으셔서 자식들이 돌아가며 간호 중이란다. 그래도 아주머님이 어느 정도 영어를 하셔서 의사소통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아주머님이 오후 12시에 마을 축제가 있다며 보고 가라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에 미안하기만 했다. 아침을 더 먹으라는 말에도 미안하다는 말로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고 어르신은 못내 아쉬운지 나의 손을 붙잡고 한참을 놓아 주시지 않는다.. 아들 또한 내가 가는 것이 아쉬운지 집 앞까지 나와 내가 멀어져 가는데도 계속 그 자리에 서서 손을 흔들어 준다. 어느 나라나 시골의 인심은 다들 같은 것 같다. 고맙습니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지만 고맙습니다…

오늘 안으로 도우베야짓까지 갈지는 모르지만 최대한 가까이 가야 한다. 하여 오늘도 기름을 넣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달렸다. 한참 더울 때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넣다가 직원들이 메론을 먹고 가라는 말에 같이 자리에 앉아 꿀맛 같은 메론을 먹고 다시 출발 하기를 몇 시간 E88에서 E80으로 도로를 옮기고도 역시나 도우베야짓까지는 무리였다. 슬로베니아 에서 처음으로 야간 주행을 하고 터키에서 어제 오늘 벌서 두 번째이다. 한참을 어둠을 뚫고 반대로 지나가는 차가 오면 반가워 달리고 뒤에 오는 트럭의 불빛을 빌려 달리기를 몇 시간.. 도우베야짓에서 200km 정도 떨어진 곳의 이름 모를 주유소가 보였고 바로 그쪽으로 가서 텐트를 쳐도 되냐고 물었다.

어둠 하나 없을 정도로 별빛으로 가득 찬 터키의 저녁을 여유롭게 바라보며 챠이를 마시며 담배를 태우시던 어르신께선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서둘러 주유소 옆 레스토랑 마당에 텐트를 치고 하루를 보낸다.

 

7/5

[내 이름은 주몽]

주유소에서 하루를 보내고 일어나는데 이틀째 달리기만 해서 그런지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겨우 몸을 일으켜 화장실에서 간단히 씻고 출발하려는데 Hakki네 집에서 로밍을 확인한  영국 휴대폰으로 잠시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아버지도 많이 괜찮아 지시고 집에 아무런 문제 없다는 소식을 듣고  서로 안부를 묻고는 다시 출발했다. 오늘은 반드시 이란 국경을 넘으리라.. 200km 정도의 거리인 도우베야짓까지 달리는데 무척이나 더웠다. 남쪽으로 내려 가지도 않았고 그저 동쪽으로 갔을 뿐인데 대륙성 기후 때문일까? 긴 바지 긴 팔의 점퍼에 온몸으로 전해지는 뜨거운 바람은 당장 스쿠터를 세워 헬멧을 바닥에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고 터키의 동쪽 끝 도우베야짓을 지나 국경으로 가는데 갑자기 거센 바람에 운전 내내 조심하며 달리기만 했다. 도우베야짓이 가까워 지자 저 멀리 아라랏 산이 보였는데 아라랏 산은 터키의 가장 높은 산으로 성경에도 나올 정도로 이름이 있는 산이다. 한 여름의 날씨에도 그 웅장함을 보여 주듯 산 위에는 눈이 녹지 않은 그대로의 모습을 보였고 공기가 아라랏 산을 타고 올라가 구름이 만들어 지는 장면을 달리는 내내 관찰(?)하며 신기해 했다.

도우베야짓을 지나 1시간 정도 달리니 드디어 내 눈앞에 터키의 국경이 보인다. 이 얼마 만에 보는 국경이란 말인가.. 역시나 실크로드의 길목답게 수 km 줄지어 있는 트럭 사이를 뚫고 지나 터키의 국경 사무소에서 여권과 스쿠터 서류를 보여주고는 이상 없이 이란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란 국경 사무소로 들어가면서 문제가 생길 것임에 분명 하였고 오기 전 앙카라에서 미리 알아본 이란 환율로 어떡해 될지 몰라 먼저 100TL를 환전했고 안쪽 주머니에 100TL를 넣고 들어갔다. 문제는 Carnet이라는 서류가 없는 것. 처음은 좋았다. 이란 국경 앞에 있는 이란 군인들의 관심 어린 시선을 받으며 한 명의 군인이 나를 친절히 대리고가서 여권에 도장도 찍어주고 반갑게 인사도, 농담도 나누었다. 문제는 그 다음. 어떤 뚱뚱한 남자가 군인과 같이 있던 나를 떨어뜨리며 어디론가 대려 가는데 나보고 대뜸 300유로를 내놓으라는 것!

젠장.. 바로 Carnet이라는 서류가 없어 자기가 대신 이란에서 스쿠터를 탈수 있게 따로 보험을 들어 준다는 것. 하지만 생각했던 것 보다 처음부터 너무 세게 불렀다.. 그새 이란의 물가가 엄청나게 오른 걸까? 아니면 이놈이 작정하고 뜯어 먹으려는 걸까..? 내가 알기로는 따로 보험을 들어도 200달러로 알고 있었는데.. 달러보다 더 높은 유로 거기다 300유로 라니.. 일단 보기에는 보험회사와 중간에 이어주는 포주로 보이는데 아무리 흥정을 해도 내가 가지고 있는 300TL과 100TL을 방금 환전한 돈으로는 터무니 없는 금액이다. 일단 터키 리라 뿐이라며 200TL을 불렀지만 터무니 없는 소리로 들을 뿐.. 계속해서 온갖 불쌍한 표정으로 학생이라며 이야기 했지만 이들도 이것으로 돈을 많이 먹었는지 오히려 옆에 있던 사람에게 시비를 걸며 분위기를 어둡게 조성한다. 젠장.. 정말 큰일이다.. 일단 생각을 해야 했다. 터키로 다시 돌아가던지.. 아니면 여기서 일단 끝장을 보고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을 하던지.. 하지만 결정하는데 오랜 시간이 흐르진 않았다. 앙카라를 떠나오면서 이란으로 가게 된다면 절대 돌아보지 않기로 이건 터키에서부터 결심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정말 300유로라는 큰 금액도 없었고 내가 가지고 있는 돈을 모두 쓰게 된다면 더 이상 통장에 돈도 없다. 즉 더 이상 여행할 경비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들어가련다. 순진했던 걸까? 아니면 시간이 너무 지나 지친 걸까? 2시간이 지나서 결국 가지고 있는 돈을 모두 보여주며 정말 가진 것이 이것 뿐이라고 이야기를 했고 300TL를 내 보였다. 그렇게 다시 흥정을 했지만 돌아오는 소리는 NO! 무조건 300유로를 만들어 오라며 내가 귀찮은지 자가용을 타고 어디론가 가버린다. 내가 어떡해 여기까지 왔는데.. 돌아가던가 아니면 스쿠터를 두고 가라고..? 나는 뭐라도 붙잡아야겠다는 생각에 이란 출입국 사무소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도움을 부탁했고 그는 그런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누군가를 불러 이야기를 하는데 여행사로 보이는 직원이 내 상황을 듣고 어디론가 전화를 하고는 다시 돌아오는 뚱뚱보 남자.. 둘이서 한참을 이야기하며 억양을 높였다가 소리를 치다가 결국 300TL로 합의를 했다. 젠장.. 처음부터 200TL만 보여 줄걸.. 문제다.. 300TL을 내면 난 이제 정말 어떡하라고.. 그들이 내 사정을 알까? 그저 300TL을 받더니 아까 어두운 분위기를 조성하던 놈은 나를 보며 My friend라며 웃음을 보인다.. 나도 그에게 웃어 보이며 XX끼 라고 말해주는데.. 300TL로 그저 서류작성에 이리저리 돌아 다니는데 나는 그 앞에서 그저 멍하니 앞날을 생각한다.. 그렇게 무려 5시간이 넘도록 그들과 씨름을 하다가 이란 국경을 벗어난다. 어찌나 목이 타던지 국경을 나오자 마자 음료를 사서 마시고 혼자서 투덜대어 본다. 이젠 아무런 대책도 없다. 그러다가 문득 떠올린 곳은 한국 대사관! 그래.. 일단 테헤란에 있는 한국 대사관으로 가서 도움을 청해 보는 것이다. 그리고는 또 다시 달렸다. Tbriz를 지나 Zanjan 그리고 Qazvin 뒤에 Tehran이 있다. 거리로는 약 700km 돈도 없으니 또다시 최대한 빨리 가야겠다는 생각에 해가 지려는 시각임에도 달렸다. 3시간을 넘게 달리니 역시 해가 떨어지고 금세 어둠이 찾아온다. 이란은 동쪽의 터키보다 더 새로웠다. 국경을 조금 지나 도로를 달리는데 주변은 한국의 7, 80년대라고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이 없다. 건물은 그냥 벽돌도 아닌 흙으로 지어진 모습이며 심지어 몇 개의 건물에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듯 보인다. 그래도 내가 지나가면 다들 신기해 하며 손을 흔들어 보이고 그들의 웃음에 전혀 불편함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먼저 Tabriz로 가야 하는데 동유럽부터 조금은 알 수 없는 문자이어도 영어의 기초 스펠링은 비슷하여 친근했지만 이란은 전혀 다르다. 페르시아 문자에 숫자까지 아라비아 숫자를 쓰지 않아 달리는 내내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유럽의 얼굴과 전혀 다른 사람들도 나를 낯설게 하였고 영어를 쓸 줄 아는 사람도 전혀 없었다. 하지만 두렵지는 않았다. 그냥 그렇게 내가 이들과 같이 웃으며 Tabriz를 물어보는 내가 신기하기만 하였다. 그래 이 여행이 나를 성숙시키며 나를 발전시키고 있다. 아직 교통법규를 모르는지 거리에는 도로의 무법자인 자가용으로 가득 찼고 터키에서의 무서운 기름값(리터당 약 3500원)과 완전히 대조 되듯이 이란의 기름값은 리터당 단돈 400원이다. 하지만 이것도 오른 것이다. 3, 4년 전만해도 리터당 100원이었던 이란이다. 아마 터키가 세계에서 기름값이 가장 비싸다면 그 옆 나라인 이란은 세계에서 기름값이 가장 싼 나라일 것이다.(개인적인 생각임) 그리고 이란에서 기름을 넣으려면 특정한 기름 카드가 필요하다. 물론 그런 카드가 없는 나는 주유소에서 일하는 사람의 카드를 받아 기름을 넣었고 주유소 마다 잔돈을 주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카드를 빌려준 값이라는 것.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이 카드로 한 달간 사용할 수 있는 기름의 한도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란에서 놀란 또 하나의 사실은 국제카드던 신용카드던 아무것도 통용이 되진 않는다. UN에서 이란국가를 위험국가로 지정 모든 경로를 막았다고 들었는데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도 시도해본 결과 다른 나라의 어느 카드도 이란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

점점 어두워 지자 마음은 더 급해졌고 어느 마을에 도착하고는 이 마을을 지나면 분명 완전히 어두워 지고 다음 마을까지 언제 나올지도 모른다. 텐트를 칠만한 장소나 얻어 잘만한 곳을 알아보다 마을 끝을 지나려는데 멀리서 나에게 손을 흔드는데 모여있는 사람들의 건물을 보는데 붉은색의 간판이 뭔가 소방서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 이곳이야 생각하고는 바로 방향을 돌려 그쪽으로 향했고 비록 말을 통하지 않아도 그들이 소방서는 아니더라도 적십자과 비슷한 응급요원임에 분명하였다. 나는 바로 자는 시늉을 하고 물어보았고 그들은 웃으며 당연히 가능하다며 스쿠터를 건물 앞에 세우라고 한다. 아.. 안 그래도 이틀 동안 샤워도 못하고 이란에 온 첫날도 밖에서 자야 하나 싶었지만 다행이 그들 건물에는 샤워장도 있단다 나는 짐을 풀기에 앞서 그들과 먼저 이야기를 나누는데 내 이름이 준오라고 하자 4명인 그들은 동시에 “주몽”을 외친다. 터키에서 인터넷으로 이란정보를 간단히 보았는데 현재 이란에서 한국 드라마인 주몽이 상영 중인데 인기가 대단하다고 들었다. 그들은 드라마 주몽에 나오는 연예인 이름을 말하며 정신 없이 나에게 질문을 퍼 붓는데 80%가 넘는 시청률이라며 나까지 깜짝 놀라게 하였다. 한국에서도 40%의 시청률이면 대단하다고 말하는데 80%의 시청률이면.. 주몽, 대장금, 김일성, 박지성.. 그들이 알고 있는 한국에 관련된 모든 것을 끄집어 내면서 어디선가 가져온 영어 사전으로 나와 이야기를 이어나가려고 노력하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한국에서 수천 km 떨어진 이란에서 그들은 입을 모다 한국을 외치는데 느낌이 뭔가 이상했다. 그들은 배가 고픈 나에게 이란의 주식인 난과 치즈, 토마토, 오이, 나물 그리고 특별히 내가 왔다며 아껴둔 걸로 보이는 참치 캔을 하나 열었다. 저녁을 먹고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다시 그들과 한국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는데 이번엔 조금 무거운 이야기였다. 바로 북한과 남한간의 문제를 이야기 하는데 나 또한 한국은 하나의 나라이며 통일이 되기를 원한다 말했고 그저 주위의 나라들과 북한과 남한의 고위 정치인들로 단지 통일이 계속 미뤄지는 것 뿐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정치 국제 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해서 그런지 그들은 갑자기 나에게 미국과 기타 여러 나라들이 이란이 위험한 나라라고 말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며 이란 사람들은 친절하며 악의 축이 아니라고 말한다. 물론 나도 이란을 오기 전에는 대중매체나 기타 정보에서 이란은 북한과 같이 핵을 보유 또는 개발하고 있으며 위험한 국가중의 하나라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또한 모든 것은 그 나라를 이끌고 있는 정치인이나 고위 계층의 잘못된 행동이라고 생각된다. 어디를 가든 아무리 위험한 나라이더라도 그 안에 살고 이는 현지인들은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이란 사람들처럼 친절하고 웃어 주는 사람이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어느 나라나 나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면에 착한 사람도 있다는 말과 같이 이란도 그런 평범한 나라인 것이다. 절대 악의 축이 아닌 것이다. 오히려 나쁜 사람들은 상위권 나라일수록 많다고 개인적으로 생각된다. 그렇게 서로 소통은 수월하지 않았지만 영어사전을 찾아가며 나에게 이야기를 나누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고마웠고 이란 국경에서 오랫동안 씨름을 해서 그런지 새벽 1시쯤 결국 미안하다는 말로 옆방으로 가서 잠이 들었다.

 

7/6

[50도가 넘는 사막을 달리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편히 하루를 보내고 8시가 지나서 눈을 떴다. 내가 갈 준비를 하자 아침을 먹고 가라며 아침 준비를 하는데 역시나 난과 치즈 그리고 계란으로 아침을 대접받았고 TV에서는 내가 한참 어릴 때 봤던 닌자거북이가 더빙되어 상영하였다. 한참이나 느린 이곳의 이란에서 문득 북한도 이럴까? 라는 생각을 해 본다. 아침을 먹고 서둘러 출발을 하려고 같이 사진을 찍는데 멀리서 큰 버스가 앞에 정차하고는 여자 한 분이 다른 사람의 부축을 받아 오는데 그들은 맥박과 혈압을 확인하고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그제서야 이들이 응급요원임을 알 수 있었다. 누구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가장 멋있다고 했는가.. 그들을 지켜보는 내가 그저 그들이 멋져 보였다. 그렇게 나는 다시 출발한다. 하루 만에 테헤란으로는 무리일거라는 생각은 들지만 최대한 가까이 가려고 한다. Tabriz로 가는 길은 터키와 전혀 다르다. 완전히 사막임을 알 수 있게 벌거벗은 산들로만 이루어져 있고 주위는 아무것도 없이 그저 흙만으로 뒤덮여 있다. 하늘을 올려다 보면 구름 한 점 없고 앞으로는 모래가 날리는지 뿌연 연기로 보일 뿐이다. 거기다 내가 오는 날은 50도가 넘는 뜨거운 햇볕이 나의 헬멧을 뚫고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그때는 덥다 덥다 해도 아무리 높아 봐야 45도 정도이겠거니 싶었는데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 이날 내가 달려온 낯은 기온은 50도가 넘었다고 한다.. 그리고 추가로 스쿠터로 달렸다니 미쳤다고 한다. 그래..내가 봐도 미치긴 미친 행동이었다. 달려도 터키와는 전혀 다른 뜨거운 열기의 바람이 나의 온몸을 때리고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50도가 넘는 날씨라.. 처음 이런 기후를 느껴본다.. 사실 50도가 넘으면 이란 사람들도 움직이질 않는다고 한다. 학교도, 공공 기관이나 일 모든 것을 멈춘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 날에 이란 한 가운데를 달린 것이다. 그래도 그렇게 달리다 지쳐 그늘 하나 없는 땡볕에 멈춰 헬멧을 벗어 던지면 잠시 머리카락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 그나마 헛웃음을 지어본다.

몇 시간이 흘러 Tabriz에 도착했고 터키에서는 잠시나마 도시를 구경하려 했지만 이란국경에서 그런 봉변을 당했으니 바로 지나가기로 했다. 하지만 기름이 없어 주유소를 찾다가 오토바이 운전을 하는 청년의 도움으로 주유를 하고 그 친구 슈퍼에 들러 그땐 몰랐던 알코올이 없는 맥주를 마셨다가 테헤란으로 가는 길목을 찾아주고는 헤어졌다. 이란은 터키보다 이슬람문화가 강한 곳으로 술을 입에 대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알코올 성분이 없는 맥주를 팔긴 하지만.. 이란의 기름값이 저렴해서 그런 걸까? 이란에서 주유소를 찾기란 쉽지 않다. 도시에도 주유소를 찾기 힘들고 도로에는 최소 100km이상 달려야 주유소가 보인다. 하지만 저렴한 기름값으로 자가용은 많이 돌아다니지만 다들 저렴한 자동차를 운전하고 대부분이 다른  나라에서 수입한 중고나 폐차 직전의 자동차들이 도로 위를 달린다. 그 대표적이고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차 중에 하나가 한국의 KIA에서 나온 모델로 구형 Pride가 정말 많이 다닌다. 이란을 돌아다니며 한국의 구형 프라이드가 여기에 다 모였다고 말할 정도로 이란 곳곳에서 기아의 프라이드를 볼 수 있다. 한국에서면 이렇게 흑 검정의 매연을 내뿜는 차를 폐기 해야 하지만 그걸 다시 이란으로 되 파는 생각은 좋지만 이란의 도심 매연 상황은 내가 봐도 심각할 정도로 이런 상황이 애석하며 큰 공급원 중 하나가 한국이라는 것에 애석하게 생각된다. 하여 주유소에는 항상 차들이 줄을 서야만 주유를 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렇게 다시 뜨거운 사막을 가로지르길 몇 시간 오늘도 역시나 야간  주행을 한다. Tbriz에서부터 나도 모르게 지도도 없는 관계로 길을 알 수 없어 물어서 간 곳이 고속도로.. 고속도로를 달려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앞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은 내게 티켓도 끊지 않고 그냥 달리라고 한다. 그리고 고속도로 주변에 만난 여러 경찰들 속도 측정을 하고 있는데 작은 스쿠터로 달리는 내가 이상한지 신기한지 가는 내내 새워서 내 여행을 설명해야 했고 한 경찰은 내 여권까지 보여달라고 했다. 그래도 경찰이 봐도 아무런 소리가 없는걸 봐서는 달려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에 그대로 테헤란을 향해 달렸고 Zanjan이라는 도시 안으로 들어가서 숙박을 하려 했지만 돈이 언제 떨어질 지도 모르고 일어나서 바로 출발해야 한다는 생각에 고속도로 옆 주유소 공터에 보니 캠핑Car도 아닌 봉고차로 뒤에 카펫을 싣고 여행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도착하자마자 텐트를 치려는데 나에게 저녁을 대접해 주었고 그들은 이스탄불에서 왔다며 가족인지 5대의 봉고차로 이동 중이었다. 나도 터키를 지나왔기에 이들과 이야기를 하는데 공통점이 있었고 그들은 내 스쿠터에 여러 터키의 스티커를 보고는 자랑스러워 했다.

 

7/7

텐트 안의 뜨거운 열기에 못 이겨 아침 8시에 일어나 주유소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가려는데 함께 하루를 보낸 터키사람들이 아침까지 챙겨 주신다. 든든히 아침을 먹고 오늘이야 말로 테헤란으로 가는 날! 역시나 오늘도 50도가 넘는 날씨인 듯 달려도 더운 바람에 숨이 막힐 지경에 도로 옆 공장을 지나면 공장의 열기에 사우나가 따로 없다. 아침에 먹은 게 문제였는지 달리는데 갑자기 속이 부글부글 끓는데 주유소는 보이지 않고 결국 멈춰 다리 밑에 숨어 내 분신을 남겨 두는데 볼일을 마치고 떠나려는데 왠 거지로 보이는 사람이 나에게 다가와 내 몸을 만지는데.. 난.. 단지 여기서 볼일을 봤을 뿐이라고..;;역시나 Zanjan에서 Tehran까지 오전에 도착하기는 무리이다. 5시안으로도 도착하기 힘들어 보여 주위에 사람만 보이면 휴대폰 한번만 쓰자고 물었고 어느 화물차 운전사분이 전화를 허락해 주셨다. 서둘러 한국대사관에 전화를 했고 사정을 말하니 5시가 지나도 기다리겠다는 말에 그나마 마음이 편해졌다. 전화를 빌려주신 화물차 아저씨는 덤으로 음료수까지 주시는데 고맙다는 말도 하기 전에 그대로 떠나신다. 역시나 테헤란에는 5시 30분쯤에 도착했고 사람들에게 물어 물어 바로 한국 대사관으로 향했다. 역시나 다들 퇴근하시고 여행자들을 담당하시는 분만 남아 나를 기다렸는데 나의 몰골이 처량했는지 보자 마자 먼저 안타깝게 보신다. 바로 나의 사정을 말했고 그 분은 독도라이더 이야기를 말해주며 일단 파키스탄 비자는 이란에서도 받을 수 없다는 말과 스쿠터 처리에 관하여 그리고 향후 나의 일정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고 먼저 결정이 난건 일단 스쿠터를 포기하는 것. 이란까지 온 이상 돌아가기도 싫었고 위쪽으로 올라가려 해도 비자를 기다릴 시간도 없다. 스쿠터는 이란정부에 기증을 하거나 대사관에서 폐기 처분레터를 쓰는 방법 등을 모색한다고 말하였고 다음으로는 인도로 가는 저렴한 비행기로 가서 배낭여행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계속해서 파키스탄 비자에 관련해 말을 했지만 아마 파키스탄 대사관에서도 못 받을 거라는 말을 할 것이며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한국대사관에서 레터를 써주지 않는다고 하신다.. 그리고 처리도 까다로운데 이란정부가 순순히 받아 주면 괜찮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하는 점부터 힘이 든다. 일이 슬슬 꼬여 가는 것 같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문제인 점은 여기서 머물 곳과 여행 경비의 문제였다. 처음 올 때는 이란의 한인회나 한국 사람의 도움을 받고자 했으나 기대와는 달리 힘들다고 말하며 그저 저렴한 숙소를 소개 시켜준다. 그러다 문득 생각난 영국에서 만난 이란친구가 여행 오기 전에 준 자신의 가족 주소가 적힌 쪽지가 생각나 전화해보니 다행히 괜찮다는 말을 들었고 여행 경비는 이란이 미국과 UN이 지정한 위험국가로 모든 은행카드와 신용카드는 이란에서 사용 할 수 없다. 당연히 카드 사용이 되더라도 통장에 돈은 없다. 어떡할까 고민을 하다가 최후의 방법으로 블로그에 내 상황을 사실대로 말하고 도움을 청하는 것. 대사관의 인터넷을 이용하여 블로그에 현재 상황을 말하고 부탁의 글을 올렸다. 과연 한 명이라도 내 부탁을 들어줄 사람이 있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때의 상황에서는 어떤 방법이라도 해봐야 했다. 그런 뒤 대사관 직원 분에게 대사관 통장으로 돈을 붙이면 달러로 교환해주는 방식이 있다며 여행자들이 급하게 돈이 없을 때 이렇게 비상 여행경비를 대사관으로부터 청탁이 가능하다는 것. 바로 휴대폰을 빌려 누나에게 전화를 했고 통장으로 인출 후 대사관으로 입금을 부탁했다. 다음날 다시 찾아오라는 말로 대사관을 떠났고 영국에서 만난 Pajam의 집으로는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중산층 집안으로 보이는 Pajam의 집에는 그의 형인 Pejman이 나를 반겨 주었고 이란의 저녁을 함께한 뒤 샤워를 하고 많은 일들로 피곤했는지 바로 잠이 들었다.

 

7/8

[하늘이 주신 선물]

일어나자마자 Pejman과 그의 어머님이 차려주시는 아침을 먹고 나 홀로 한국 대사관에 갔다. 어제 말한 500달러를 받고 영사관님까지 만나 나의 스쿠터 문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선 이란정부에 물어보고 안되면 폐기처분 레터라도 만들어 보자는 말로 일요일 다시 보기로 했다. 여러모로 스쿠터를 이란에 두고 가려니 여러 문제가 많은 것 같다. 이거 이러다가 나중에 스쿠터 때문에 발목 잡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나는 다시 대사관 안쪽으로 가서 인터넷을 사용하러 갔고 어제 블로그에 올린 글에 많은 덧글과 메일 그리고 쪽지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0명 이상의 분들이 내 여행을 지지해 주시며 알지도 못하는 나에게 도움을 주신 것이다. 글을 하나하나 읽는데 정말 감사했고 이란에 도착해서 막막했던 내 심정이 그나마 조금은 풀려서 다행이었다. 글을 올리면서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사람도 있을 거라는 걱정을 했었다. 정말 눈물을 글썽이며 글을 읽었고 다시 감사 드리며 어떡해 보답을 해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비록 이란에서 스쿠터 여행이 끝이 나겠지만 아직 내 도전은 끝이 아니다. 스쿠터가 없으면 내 두 다리가 있다. 스쿠터를 이란에서 해결하고 인도로 간 뒤 버스가 되든 기차가 되든 자전거가 되든 심지어 히치하이킹을 해서라도 한국으로 돌아 갈 것이다. 하지만 이때까지 스쿠터만 의지하며 동쪽으로 달렸던 나. 이제부터 배낭을 어깨에 짊어 지고 동쪽으로 가려니 막막한 것은 어쩔 수 없는 가보다. 거기다 많은 일들로 나 스스로 Panic상태였다. 그렇게 몇 시간을 대사관에서 인터넷을 쓰며 시간을 보내는데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대사관 직원 분이 어떤 분과 함께 나에게 오는데 소개를 시켜주며 인도여행을 하려는 한국 사람이라고 한다. 나는 반가워 내 소개를 하고 이것 저것 물어보는데 나랑 비슷한 점이 상당히 많았다. 1년 전 영국으로 가서 어학연수를 하고 영국 대학교에 입학한 뒤 한국으로 가서 비자를 다시 만들어야 하는데 남은 시간에 이집트에서부터 배낭여행으로 한국까지 가려고 하는데 파키스탄 비자 때문에 인도 비행기를 예매하고 인도 비자를 받는다는 것. 나보다 2살이 많은 형님은 8월 중순에 한국에 돌아가야 한다는 것도 나와 비슷하고 나도 파키스탄 비자를 터키에서부터 받으려고 시도했으나 받지 못하다 보니 어느 순간 오기가 생기는데 이 형님도 나와 비슷한 생각이 셨다. 그리고 나는 주체 없이 바로 물었다. “혹시 같이 여행 할 생각 있으세요?” 너무 갑작스레 물었는지 살짝 당황하시는데 몇 시간을 같이 이야기 하다가 결국 함께 여행 하기로 하고 대사관에서 말해준 이란에서 인도로 가는 비행기 가격보다 저렴한 쉬라즈에서 인도로 가는 저렴한 티켓을 알려주었다. 같이 이야기를 해보니 이 형님은 배낭여행을 많이 한 듯 보였고 여권에는 여러 국가의 스탬프와 비자가 여권 종이를 가득 매웠는데 여행 스타일도 나와 비슷했다. 나는 이때까지 스쿠터 여행으로 계속 지출내역만 적어 왔을 뿐 하루에 얼마 정도를 써야 할지 등 체계적으로 여행경비를 운영하지 못했지만 형님께서 가장먼저 나에게 가르쳐준 것은 하루에 얼마를 쓸지를 총 여행경비에서 날짜를 나눠 계산하라고 했고 알맞은 가격은 하루 3만원! 하루 하루 지출 내역을 적으며 3만원을 넘지 않게 관리를 하면서 적게 쓴 날은 다음날 +로 많이 쓴 날은 다음날 그만큼 더 아끼며 여행경비를 관리하면 좋다고 한다. 여러모로 배낭여행이 될 것 같은 초보인 내가 배울 수 있는 좋은 분을 만난 듯 했다. 우리는 일요일 만나기로 약속하고 그렇게 헤어졌다. 다시 Pejman의 어머님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Pejman이 테헤란 시내를 자기 차로 구경시켜 주겠다며 밖으로 나섰다. Pejman도 Pride를 운전하는데 서서히 저녁 노을이 도시를 감싸는 테헤란을 달리는데 그래도 새로운 여행에 앞서 마음이 한결 편안해 졌다. 우리는 테헤란 북쪽에 있는 산 중턱에서 테헤란 야경을 보고 돌아왔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더 이상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7/9

아침 일찍이 일어나 식사를 하고 Pejman과 테헤란을 돌아 보기로 했다. 먼저 Pejman가족과 Pejman아버지가 계시는 누나의 집으로 향했다. 뜨거운 테헤란의 시내를 가로질러 서쪽으로 가서 같이 인사를 드리고 Pejman 집으로 간 뒤 Pejman과 나만 나와 우선 서울의 남산타워와 같은 테헤란에 있는 타워를 구경하기로 했다. 아직 공사가 마무리 안되어 입장이 될지 몰랐지만 가이드와 함께 올라가는데 한 사람에 1만원이라는 어마한 가격.. 차라리 난 그냥 안 올라갔으면 했지만 Pejman도 처음 올라가 보는 거라며 전화로 나 때문에 관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뭐.. 내가 돈을 내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결국 가이드와 함께 300m정도에 올라가 테헤란의 전망을 보는데 저 멀리서부터 계속 이어지는 도로에 역시 넓은 나라라는 것을 실감 할 수 있었고 가이드가 테헤란의 최 고층 55층 빌딩, 공항, 축구장, 테헤란 북쪽을 감싸고 있는 북쪽의 산, 개선문과 같은 곳 등을 설명해 주었다. 내려와서 다음으로 향한 장소는 SAD ABAD MUSEUM COMPLEX라고 옛 이란 왕이 살던 곳으로 갔다. 건물 내부로는 White Palace와 Green palace 그리고 한 명의 딸이 4년 정도 머물렀다는 곳을 구경했는데 한 가족이 살던 장소로는 어마하게 크다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따지고 보면 한국의 경복궁을 떠오르면 별거 아니라고 생각된다. 우린 계속 걸으며 이란 역사에 대하여 이야기 했는데 3, 40년 전 이란에 혁명이 일어나 왕가를 귀향 보내 큰아들은 런던에, 여왕은 프랑스에 살고 있다고 하지만 혁명이 일어나고 이란정부의 독점 파워로 시민들은 그날의 혁명을 실수였다고 많이들 말한다고 하며 예전 그날을 그리워 한단다. 물론 이란 사람들 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그리고 놀란 점은 테헤란의 모든 카사노바나 카지노의 건물은 불태워진 흔적 그대로 남아있다. 그들의 혁명과 역사에 관하여 나중에 더 알아봐야겠다. 우리는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와 바로 위로 올라가면 테헤란 북쪽에 위치한 산으로 올라가는 입구 중 하나라는 말에 가보았다. 올라가는 길에는 많은 사람들이 등산을 오르거나 내려오는 중이었고 주위에는 간식을 파는 잡상인들이 북적대며 물건을 파는 소리, 흥정을 하는 소리, 오르거나 내려오며 친구들과 인생사를 이야기 하는 소리에 이란 사람들의 냄새가 가득한 장소였다. 나는 거기서 산 중턱까지 올라가며 그들의 분위기에 취해 걸었고 해가 저물자 내가 가보고 싶었던 이란에 있는 미국대사관으로 가자고 했다. 이란으로 오기 전 테헤란에 대하여 알아보는데 한가지 흥미로운 점이 이란에서 혁명이 있을 당시 이란사람들이 미국대사관으로 들어가 미국인들을 보내고 대사관을 폐기 시켰다고 하며 그 이유로 아직도 이란에는 미국대사관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볼 것은 없지만 내 눈으로 그 현장인 옛 미국 대사관을 보고 싶었다. 지금은 이란과 미국에 관련된 자료를 찾는 도서관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하며 옛 미국대사관을 한 바퀴 돌아보고는 돌아왔다. 그리고 Pejman의 어머니 집에서 다음날 가족들이 갑자기 약속이 생겼다며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는데 나는 바로 일요일 만나기로 했던 형님을 떠올려 형님이 머물고 있는 숙소에 전화를 했고 내일 그쪽에서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Pejman은 내가 그쪽으로 가는 것이 못내 미안한지 계속해서 내 주위에서 이것 저것 챙겨 주려고 한다.. 아.. 피곤하다...

 

7/10

아침 일찍 마지막 아침을 먹고 Pejman과 호스텔로 향했다. 스쿠터는 내일 대사관에 가져갈 때 가져 가기로 하고 짐을 Pejman 차에다 실은 뒤 먼저 우체국에 갔다. 날씨가 더워서 그런지 문이 닫혔지만 안에  있는 경비와 이야기를 해서 한국까지 가격을 알 수 있었다. 10kg에 67500원 괜찮은 가격이다. 그리고 Mashhad Hostel에 왔는데 숙소의 환경을 보고는 Pejman이 나에게 미안한지 주인에게 계속해서 안전하지를 물어본다. 걱정 말라며 Pejman을 보내고 다시 숙소로 돌아와 한동안을 침대에 앉아 있는다. 이란에 도착해서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그러다 같은 방을 쓰는 대만 친구가 들어와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자기도 한국사람과 여행 중이라며 이방에 나를 포함하여 한국사람이 3명이 있단다. 그들은 중국, 파키스탄을 지나 이란으로 왔다는데 현재 중국과 파키스탄 국경과 인도에서만 파키스탄 비자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아! 파키스탄이여.. 이야기를 나누다가 화장실로 가서 손 빨래를 하고 얼마 뒤 한국 사람 한 명이 들어왔고 겉보기에도 배낭여행 경험이 엄청 많아 보였다. 그 형님은 내 사정과 여행 이야기를 듣고는 앞으로 내가 가게 될 인도, 파키스탄, 중국의 정보를 이야기해 주셨다. 형님도 배낭여행 초보인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이것저것 챙겨주시는데 중간에 대사관에서 만난 형님이 들어왔다. 한국도 아닌 이란에서 그것도 테헤란 어느 숙소 한방에 3명의 한국인이 있다. 신기하다.. 그렇게 우리는 여행 정보를 주고 받으며 이야기를 하다가 먹는 이야기를 하는데 큰형님께서 어디론가 나가시더니 몇 시간 뒤 닭도리탕을 만들었다며 먹으라고 하신다. 이 얼마 만에 먹는 한국 음식이란 말인가.. 연이어 “감사히 먹겠습니다”를 난발하며 밥과 함께 닭을 뜯으며 배를 채웠고 미안한 마음에 작은 형님과 나는 설거지에 커피를 끓여 나눠 마셨다. 다시 방으로 들어가 한국노래를 내 컴퓨터로 들으며 여러 이야기가 오고 갔고 중간에 독일 여행자가 방으로 들어와 최근에 북한 여행을 했다며 사진을 보여주는데 몇 나라의 외국인들은 북한의 정해진 도시를 방문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사진에 저녁이 되면 다리가 올라가 섬이 되는 호텔과 계속해서 버스 안에서의 관람 등 여러 특이한 이야기를 말해주는데 그 사진들이 비록 같은 나라이지만 저 멀리 다른 세상을 보는 것 같은 느낌에 마음이 아프다. 그 친구는 언론에는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는 위험한 나라라고 말하지만 실제 북한이 그런지 보고 싶어서 북한여행을 선택했다고 했고 북한사람들의 친절함에 놀랐다고 한다. 그렇게 한참을 이야기 하다가 우리는 12시가 되어 잠이 든다..

 

7/11

[초보 배낭여행자]

Mashhad Hostel에서의 아침. 일직이 파키스탄 대사관을 가기 위해 8시에 일어나 정신을 차리니 큰형님께서 어제 닭도리탕도 모자라 라면까지 끓여 주셨다. 아침부터 라면으로 배를 든든히 채우고 샤워한 뒤 두 형님과 파키스탄 대사관에 버스를 타고 갔다. 50원 버스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가니 파키스탄 대사관이 보였고 아직 문을 열지 않았는지 밖에서 경찰들과 수다를 떨다가 얼마 뒤 철창 앞에서 업무를 보는 파키스탄 직원들.. 우린 비자에 대하여 물어 봤지만 이란인과 파키스탄 사람들만 업무를 본다는 소리만 돌아올 뿐이다. 다른 방법이 없느냐고 사정해 보았지만 NO! 그렇게 파키스탄 대사관을 떠나 큰형님은 테헤란 대학교를 보러, 작은 형님은 인도대사관으로 그리고 나는 한국대사관으로 흩어졌다. 지하철을 타고 Pejman 어머니 집 근처에 내려 스쿠터를 타고 한국대사관으로 갔다. 오늘이면 레터를 받을 줄 알았더니 막상 도착했을 때 이란정부에 보내는 걸로 시도를 한다며 관련된 이란사람을 불러 내 스쿠터 정보를 물어보는데 결국 다시 테헤란을 와야 한다는 말. 이제 스쿠터가 내 발목을 잡는 구나.. 뭔가 불안함이 모르게 다가오는 것 같다. 그렇게 스쿠터와 열쇠를 대사관에 주고 숙소로 돌아가려는데 지하철을 찾느라 한참을 걸었다. 스쿠터가 있었다면 이럴 필요도 없고 자유로이 돌아다니며 쉽게 찾을 수 있을걸 이젠 내 두발로 찾아 다녀야 하는 상황이 그저 이상하기만 하다. 30분을 걸어 지하철역에 도착해서는 숙소로 갔는데 오늘 아침에 떠난다는 큰형님의 말에 인사라도 드리고 싶었지만 내가 도착했을 때는 벌써 떠나고 없는 상태였다. 그저 한국 사람인 것만 알뿐 이름도, 무얼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고 그렇게 헤어졌다. 언제다시 만날지도 모를.. 여행은 그런 것이다. 미련도 없이 왔다가 떠나는 것.. 우린 짐을 싸서 Mashhad로 가기 전 내 짐을 소포로 붙이기 위해 우체국을 들렀지만 벌써 문이 닫혀 있다는 말에 숙소 옥상 창고에 짐을 맡기고 일요일쯤 돌아온다 말한 뒤 배낭을 매로 터미널로 떠났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터미널에 여러 개의 버스 회사가 있고 여러 곳을 들러 가격을 확인한 뒤 표를 구매하는 방식이다. 가격은 대략 비슷하지만 한 곳에서 외국인이라고 저렴하게 표를 구매했다. 진짜 배낭여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버스에 올라 이런저런 이야기를 형님과 나누다가 창가를 보는데 높은 산을 감싸고 있는 난간도 없는 2차선 도로에 산과 산 사이에는 계속이 흐르고 산을 지나니 사막이 보이는데 문득 이 길을 스쿠터로 직접 누볐다면.. 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스쿠터 여행 중 한번도 읽지 못한 ‘철학과 굴뚝 청소부’라는 책을 처음 읽는다. 나는 지금 스쿠터 여행과 배낭여행의 장단점을 직접 체험하며 느끼고 있다. 형님이 말하길 스쿠터 여행을 하면 지도상으로 선이 되지만 배낭여행을 하면 지도상으로 점이 된다는 말을 하는데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서서히 눈이 감겨온다.

 

7/12

버스에서 계속 잠들다가 아침 7시쯤 누군가 깨워서 일어났더니 Bojnurd에서 버스를 갈아 타라는 소리였다. 우린 작은 버스로 갈아타고 Mashhad로 향했고 10시가 지나서야 도착! 테헤란에서 17시간의 버스 행인 것이다. 도착하자 마자 Yazd행 버스 티켓을 사고 화장실에서 간단히 씻은 뒤 터미널에 배낭을 보관하고 Haram-e Razavi로 향했다. Mashhad는 이란에서 테헤란다음으로 가장 큰 도시로 이란의 동쪽 끝에 자리잡고 있는데 관광지로 그렇게 유명하지는 않지만 이란에서 이슬람의 성지로 유명한 곳이다. Haram-e Razavi로 가는 길에 음식점에 들러 식사를 하고 2km정도를 걸어간 뒤 도착했다. 역시  이란의 이슬람 성지인 곳이라 그런지 가방이나 카메라는 반입금지 이다. 바로 옆에서 가방을 보관하고  들어가려니 외국이라 가이드와 함께 입장을 해야 한단다.. 국가가 운영하는지라 가이드 비는 따로 받지 않지만 참. 들어가기 까다롭군.. 기다리는 동안 입구 관리자들의 한국에 대한 뜨거운 관심으로 쉼 없이 이야기를 해야 했고 이슬람을 믿지 않는 지라 건물 내부로는 입장을 못하고 내부로 돌면서 건물 외부만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렇게 가이드가 와서야 입장을 했고 가장먼저 축구장보다 넓은 광장이 보였다. 7, 8월에 사람들이 몰려 이곳에서 기도를 드린다는데 광장에 사람들이 가득하여 입구까지 사람들이 줄지어 기도를 드린다고 한다. 이슬람의 이맘 12명중 1명이 이란사람인데 그 사람이 죽고 안치된 곳이라 사람들이 이곳에 기도를 한다고 하며 언뜻 시내를 보니 테헤란 Green Palace에서 본 실내가 모두 거울조각으로 장식되어있는 모습과 같은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실내의 벽과 천장이 모두 거울 조각으로 되어있는 그 화려한 모습은 직접 보지 않고서는 느낄 수 없다. 외부의 벽은 타일로 장식을 했으며 계속해서 확장 중이라 여기저기 공사가 한창이었다. 그렇게 내부를 빠져 나와 형님과 더위도 식힐 겸 앞에 앉아 서로 영국 생활 이야기도 하고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사진을 못 찍은 게 못내 아쉬워 건물 옥상에 올라 찍으려 했지만 대부분 건물은 호텔이라 위로 올라갈 수 없었다. 그렇게 찾아 다니길 결국 외부 한 바퀴를 돌고 터미널로 돌아왔다. 우리는 배낭을 찾고 다시 간단히 씻고 Yazd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7/13

역시 배낭여행을 하니 일기를 자주 쓸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약 13시간의 버스 행으로 Yazd에 도착했다. 터미널은 우리가 가고자 하는 Old city와 멀리 떨어져 있었고 배낭을 매고 터미널을 나오는데 터미널과 도시 사이로 약 3km그저 허허 벌판이다.. 가는 길에 잠시 깨어 창 밖을 보니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모래사막을 보았다. 이란의 중심이 사막인데 Yazd라는 도시는 이란의 정 중앙에 있는 도시로 옛 실크로드의 길목으로 한때 번성하던 도시였지만 칭기스칸의 점령에 발전이 멈춘 상태로 보전이 된 도시이다. 사막 한 가운데 도시라서 그런지 도시라서 사막으로 보이지 않지만 모래바람이 등에 짊어지고 있는 배낭을 때려 어깨가 더 아파온다. 2km 정도를 걷다가 우리는 지쳐 버스를 타는데 Old city로 가려면 버스를 갈아타야  하는지 영~ 엄한 곳에 내려 준다. 족히 총 4km는 넘게 걸어 하루 머물 Amir Chakhmagh Hostel로 갔고 테헤란에서부터 버스만 탄지라 배낭을 내리고는 바로 샤워를 했다. 오랜 버스 행과 무거운 배낭을 매고 걸었는지라 잠시 쉬다가 아래 과일가게에 수박 하나를 사고 냉장고에 넣은 뒤 밖으로 나섰다. 먼저 배가 고파서 먹을 곳을 찾는데 뜨거운 낯이라 그런지 거리에 사람도 없고 가게마다 모두 문이 닫혀 있다. 겨우 한 곳을 찾아 샌드위치를 먹고 Lonely Planet에 적혀있는 길과 같이 Old city를 걷기로 했다. Hazirch Mosque를 지나 Jameh Mosque를 구경하고 Khan-e Lari라는 150년 된 정통 집을 관람한 뒤 성 외벽을 따라 한 바퀴 돌고 돌아오는데 7000년의 역사인 만큼 실크로드의 중요 행선지로 당대 번성했던 교류를 상상 할 수 있었고 모든 건물이 집과 진흙으로 만들어 진 모습과 지붕에는 Badgirs라고 더운 사막 한가운데 작은 바람이라도 모아 물풀로 시원한 바람을 만들어 건물내부로 보내고 더운 바람은 밖으로 빼내어 준다는 말에 그 오래 전부터 이런 과학이 존재 한 것만으로 놀라웠다. 거기다 사막이라는 문재로 지하에는 수로가 있었는데 50년 전까지도 지하 수도에 물이 흘렀다는데 지금은 말라 사용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Old city내부를 걸으며 영화 ’놈놈놈’의 추격 신 한 장면을 떠올렸고 한때 번창하던 도시가 칭기스칸의 정벌로 쑥대밭이 된 상황도 상상하며 건물 하나 하나를 보았다 우리는 Old city 밖의 성벽을 돌아 숙소로 돌아가는데 굳게 닫혀있던 가게들이 이제서야 문을 열기 시작하며 사람 하나 없이 한적했던 도로에는 점점 밖으로 나와 거리는 누비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7/14

어제 새벽까지 잠이 오지 않아 뜬눈으로 침대에 누워 온갖 잡생각을 하다가 새벽 3시가 지나서 잠이 들었다. 그래도 아침 9시가 되어 눈이 떠졌고 형님은 오랜 버스 여정으로 전날 오래 자겠다며 선전포고를 했는데 역시나 꿈나라에 가있다. 샤워를 하고 12시에 짐을 빼야 하기에 어제 먹고 남은 수박 반 통을 화채로 만들고 터키에서 한국사람에게 받은 간편 비빔밥을 만들어 아침을 해결했다. 12시에 맞춰 배낭을 숙소에 보관하고 밖으로 나왔다. 우리는 우체국으로 가서 우표를 사고 Jameh Mosque 근처 가게에서 엽서를 사서 편지를 썼다. 나도 알고 있는 주소라고는 집뿐이라 가족에게 편지를 썼다. 처음으로 여행 중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는 것 같다. 벌써 2달이 되어가는 유라시아 여행. 전화도 자주 못 드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한 장의 엽서에 내 마음을 담기란 쉽지 않다. 40도에서 50도를 넘나드는 이란. 아마 이란이 나의 유라시아 여행에 가장 기억에 남을 국가일 것 같다. 스쿠터 여행에서 배낭여행으로 바뀐 나라며 여행경비가 없어 블로그에 올린 사연이며 여행 중 어려운 상황이 가장 많은 나라이다. 이건 단지 한 사람의 여행이자 모험일 뿐이다. 문득 여행을 마치고 돌아갈 집이 있다는 생각에 가족들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앞으로 남은 한달. 더 많은걸 보고 배우며 느끼고 더욱 성숙해서 가족의 품으로 가길 스스로 다짐해 본다. 너무 더운 날씨에 우린 다시 숙소로 돌아와 버스 티켓을 파는 가게가 오후5시에 연다는 말에 계속 숙소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오후 4시에 밖으로 다시 나와 에스파한으로 가는 버스표를 구매하고 오후가 되자 무더위도 줄어들어 활기찬 Yazd의 상점을 천천히 걸어가며 구경하다가 다시 돌아와 배낭을 매고 터미널로 출발했다. 숙소 주인이 말해주어 이제야 안 사실은 버스터미널이 한달 전에 원래의 위치보다 더 멀리 옮겼다고 한다.. 그래서 어제 Yazd에 도착 후 그만큼 걷고 버스를 탔는데도 오랫동안 걸은 이유를 이해했다.. 숙소 어르신에게 정확한 터미널 위치와 시내 버스를 타고 가는 방법을 듣고는 터미널로 도착 후 저녁 12시 30분 차로 Esfahan으로 향했다. Yazd와 Esfahan은 그렇게 멀지 않은 거리에 위치 하고 있어 5시간 정도면 도착. 버스에 올라 타자마자 바로 잠이 든다. 내일 Esfahan에 도착하자마자 숙고를 잡고 배낭을 놓고 바로 비자 연장을 해야 한다. 그리고 대사관에 전화를 해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상황도 들어야 하는데 좋지 못한 소식을 들을 까봐 걱정이다..

 

7/15

[6시간의 대 혈투]

에스파한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 6시. 나침반을 꺼내어 위치를 확인하고 남쪽으로 가는 방향으로 버스를 탄 뒤 가장 저렴한 숙소로 도착한 시간은 6:30. 자리가 없어 12시에 check in을 할 수 있다는 소리를 듣고 바로 배낭을 맡기고는 비자 연장을 하러 갔다. Lonely Planet에 보니 도심과 떨어진 곳으로 버스를 두 번 갈아 타야 하는데 하루 3만원 여행자에겐 큰 가격으로 한번에 갈 수 있는 곳까지 걸어가기로 한다는 걸 그만 10km이상을 걸어서 도착한 것 같다. 9시가 가까워 져서 도착을 하고는 서둘러 비자 연장 신청을 하는데 이놈들이 복사를 하라니 은행에 돈을 넣고 오라니 여러 주문을 하는데 버스를 타고 오늘 도착해 10km이상을 걸어와 지칠 대로 지친 우리에게 은행이 어디 있냐고 물으니 오른쪽으로 가면 된다는데 가도 가도 나오지 않는다..;; 말할 때부터 귀찮아 하는데 젠장.. 나는 속이 타 들어 간다고.. 사람들에게 묻기를 반복하다가 어느 이란 사람이 여기서 걷기에는 멀다며 자기 차를 타고 대려다 주겠다는데 처음엔 돈을 받는 줄 알고 사양했는데 그냥 태워 주겠다고 한다. 그의 차를 타고 지정된 은행으로 가는데 이놈.. 이 거리를 그냥 오른쪽으로 가라고 말한 게 그저 미울 뿐이다. 은행에서 비자 연장 비 2만원을 넣는데도 은행의 처리 속도가 힘들다.. 순서를 기다리면서 문득 생각한 게 나는 그래도 버스에서 계속 잤지만 버스를 타고 잠을 제대로 못 잔다는 형님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은행에 돈은 입금하고 돌아오는 길에 복사가게를 찾아 여권과 이란 비자를 프린트 하고 서둘러 돌아오는데 일요일에 다시 오라고 한다.. 아.. 3일 뒤가 토요일이 아니라 일요일이구나.. 큰일이다. 토요일 저녁에 테헤란으로 가서 한국대사관을 들러야 하는데 그리고 수요일인 21일에 쉬라즈에서 인도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토요일 저녁 차로 일요일에 테헤란에 도착하고 일요일 저녁 차로 쉬라즈에 도착하려는데 일정이 꼬이고 있다. 우린 앞에서 허무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해결하려는데 최선의 방법은 형님이 테헤란으로 가서 인도 비자를 받으며 내짐을 붙이고 한국대사관에서 레터를 받아오고 나는 일요일까지 에스파한에 머물렀다가 여권을 받고 쉬라즈로 가는 방법으로 이야기를 했는데 일단 한국대사관에 전화를 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전화하는 곳을 찾으러 걸어가는 내내 혹시나 나쁜 소식이 있을 까봐 걱정이 앞선다.. 그리고 은행에서 걸어오며 봐둔 전화가게에 들러 한국대사관에 전화를 하는데..

정말 바라지 않았던 문제가 발생했다. 이란 정부에서 스쿠터를 받기를 거절하고 한국대사관에서도 이를 이란정부에 물어 본지라 상황이 어려워질까 봐 걱정되는지 그냥 스쿠터를 한국까지 보내라고 한다. 가격은 1600달러! 스쿠터 가격보다 훨씬 높은 가격이다. 그리고 그럴 돈도 없다. 아무리 여행을 하면서 정들었다고 하지만 그 정도의 가격에 스쿠터를 한국에 보낼 상황도 안되고 한국으로 보낸다 하더라도 한국에서 또한 영국의 스쿠터로 처리가 힘들게 분명하다.. 비자연장에서부터 모든 게 꼬여가는 느낌이다.. 큰일이다. 이미 인도로 가는 비행기표도 예매한 상태이고 시간도 얼마 없다. 우선 전화를 끊고 자리에 앉아 상황을 파악하는데 도저히 스쿠터를 보내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결론이 들고 방법으로는 다시 스쿠터를 타고 문제가 되지 않는 터키로 가서 스쿠터를 처분하고 터키에서 인도로 새로이 티켓을 예매하고 가던지 내가 예매한 아라비아 항공이 취항하는 시리아에서 인도로 가는 티켓으로 바꾸던지.. 다른 방법이 없다.. 다시 전화를 해서 혹시 분실 신고를 해서 경찰서에 증명서를 받으면 되지 않겠냐고 물었더니 한국대사관에서 이미 이란정부에 물었기 때문에 괜히 문제가 되면 더 커질 수 있다며 말을 하는데 대사관의 사정도 알겠지만 못내 미워진다.. 마지막에 대사관을 찾아 갔을 때 만난 이란 사람에게 전화를 해서 물어보니 일단 테헤란으로 오라고 한다.. 그리고 한번 더 물어보겠다고 한다.. 19일에 정확히 결정이 날것 같다고 하며 내가 비자연장을 10일 했다고 하니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2주를 하라고는 갑자기 오후 2시에 전화 달라고는 끊어 버린다.. 젠장.. 꼬여도 완전 꼬이는 구만.. 당황하는 내 모습에 형님은 어떡해서든 도와주려고 이런 저런 조언을 말해주는데 오늘 아침부터 나 때문에 고생을 했는데도 어려운 내 사정을 도와주려는 모습에 정말 고마울 뿐이다.. 일단 다시 비자 연장한 곳으로 찾아가 2주로 수정하려는데 벌써 내 서류가 넘어갔는지 옆 건물로 가서 말해보라는데 서둘러 옆에 있는 건물로 달려가 물어보는데 한 분이 영어를 잘 하시는데 내 표정이 급해 보였는지 2주 수정하는데도 도와주시고 내 사정을 말하고는 혹시 일요일이 아니라 하루 일찍 토요일에 받을 수 없느냐는 물음에도 알겠다며 내 영수증에 날짜를 수정해 주신다.. 문제가 있더라도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가려고 하는 나의 손에 사탕 하나를 쥐어 주시며 웃어 보이시는데 그 웃음을 잊을 수 없다. 그래도 한 개의 문재가 해결은 되었다. 그래도 더 큰 스쿠터의 문제가 심각하다.. 이러다가 정말 다시 터키로 돌아가서 인도로 가는 방법을 선택 해야 될지도 모른다.. 그러면 형님과도 헤어져야 하는데 혹시나 그렇게 되면 인도에서 일주일 정도는 나를 위해 기다려 주겠다고 하신다.. 여행 전에 알지도 몰랐던 나에게 지금 이렇게 나를 위해 도와주시는 형님.. 하지만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 계속 걱정 뿐이다.. 그렇게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데 12:30이다. 숙소에서 비자연장을 하러 가는 길에 모든 문이 닫혀있으며 한적한 에스파한을 봤다면 지금은 사람들로 붐비는 관광지의 에스파한을 보고 있는데 지나가며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며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이 많다. 혼자서 이들이 아침부터 지금까지 내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까 라는 생각으로 헛웃음을 지어본다.

숙소로 돌아오기 전 식당에 들러 햄버거로 배를 채우고 숙소에서 짐을 풀고 샤워를 한 뒤 오후 2시에 전화를 하려는데 빨래를 하러 간 사이 얼마나 피곤했으면 휴대폰을 들고 있는 채로 잠들어 있는 형님의 모습에 아마 나 때문에 휴대폰으로 일정을 체크하다가 잠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나보다 영어가 능숙한 형님이 대사관에서 만난 이란 사람과 대화를 해 보겠다고 했지만 미안한 마음에 도저히 깨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오후 2시에 혼자서 나가 전화가게를 찾고는 전화를 하는데 휴대폰이 꺼져있다.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슈퍼에 들러 간식을 사고는 숙소 휴게실에서 여행기를 마저 작성하는데 그래도 오랜만에 올리는 글이라 일기를 바탕으로 길게 쓰는데 갑자기 컴퓨터가 꺼지더니 이때까지 쓴 모든 글이 그대로 사라졌다..;; 오늘 왜 이러지..? 지쳐서 다시 여행기를 쓰는데 아까보다 길게는 쓰지 못하고 이제 오후 8시다. 형님은 얼마나 피곤했는지 아직까지 자고 있다.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 먼저 전화를 해보고 확실히 이야기를 다시 한 뒤에 혼자서 에스파한을 가볍게  한 바퀴 돌고 인터넷 카페를 들러 여행기를 올리고 돌아와야겠다.

가방에 노트북과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섰고 전화를 하려고 가게에 갔더니 문이 닫혀 있다. 할 수 없이 공중전화를 쓰려고 공중전화카드를 사는데 세 번이나 전화를 해도 받기는 하는데 소리가 너무 작고 주위의 소음으로 의사소통이 안 된다. 결국 전화를 끊고 나중에 전화를 하기로 하고 에스파한을 둘러 보려고 한다. 오늘 아침부터 에스파한을 10km이상 이나 걸었지만 느낌은 아침과 전혀 다른 에스파한의 거리이다. 아침에는 한적한 도로에 이란답지 않게 도시에 녹지 조성이 잘 되어있었고 주위에 공원도 잘 꾸며 놓은 것이 이란을 대표하는 관광지다웠다. 에스파한은 한국으로 따지면 경주라고 할 정도로 나라의 대표 관광지 이며 볼거리가 많은 도시이다. 오후 8시의 늦은 시간으로 거리의 모든 상점은 문이 열려 있고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북적 이는 분위기는 테헤란과 또 다른 분위기로 다가왔고 어디를 갈까 생각하다가 오늘 아침부터 많이 걸어서 발바닥에 물집이 잡히려는데 그냥 에스파한의 대표 볼거리인 지구의 반이라는 이맘호메니 광장만 둘러 보기로 했다. 숙소에서 이맘호메니 스퀘어 까지는 걸어서 1km정도 도착하자마자 군더더기 없이 있을 곳에 있는 아름다운 조명에, 그 크기에 그리고 광장 잔디밭에서 더위를 피하려고 나와있는 엄청난 인파에 놀랐다. 처음에는 중앙을 가로 지르며 걷다가 이맘호메니 모스크 안을 둘러보고 나와서 내부를 한 바퀴 돌고 다시 외부를 한 바퀴 돌다가 또 내부를 그리고는 건물 안쪽으로 다시 한 바퀴를.. 그렇게 이맘호메니 광장을 5바퀴이상은 걸어 다닌 것 같다. 혼자서 음악을 들으며 걷는데 오늘 아침에 있었던 스트레스가 그나마 풀리는 것 같았고 시간도 늦어 지금 전화하기에는 예의도 아니고 어차피 전화해 봤자 안 좋은 소식만 들릴 것 같아 오늘 전화하나 내일 전화하나 달라지는 건 없어 그냥 내일 전화하기로 한다. 이맘호메니 광장에 있는 이란 사람들처럼 나도 광장의 잔디 밭에 앉아 모처럼 혼자만의 여유를 즐겼고 혼자 있는 내게 이란의 한 대학생이 나에게 다가와 인사를 하고는 대화를

 

-PS-

아무리 이란에서 인터넷 카페를 들러도 여행기를 올리는데 속도가 무리인 듯 합니다. 그래서 언제가 될지 아니면 한국에 도착을 해서가 될지 모르겠지만 사진은 나중에 올려야 될 것 같습니다. 아직 인도로 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어떡하든 아시아에서는 여행기가 아마 글을 위주로 진행될 것 같네요. 어떡해 되든 간에 19일 이나 21일 전까지는 모든 제 여정이 결정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 어떡해 될지는 모르겠지만 최악의 상황으로 바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수도 있는데 만약 그렇게 되면 저를 지지해 주시고 응원해 주신 분들께 미안하게 될 것 같네요.. 하지만 제 스스로의 도전으로도 최대한 노력할 것이며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갈 것은 약속 드리겠습니다. 단지 스쿠터의 문제 뿐입니다. 세상에 저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도 많고 저는 단지 그냥 여행일 뿐입니다. 힘들고 지치면 그냥 한국으로 돌아가도 됩니다 물론 저 스스로 실망을 하겠죠.. 하지만 저를 반겨주는 집이 있습니다.

그래서 행복합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잘 있습니다...^^

 

- 경비 -

7/2 – 나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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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wonddolg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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